사람 그리워 당신을 품에 안았더니
당신의 심장은 나의 오른쪽 가슴에서 뛰고
끝내 심장을 포갤 수 없는
우리 선천성 그리움이여
하늘과 땅사이를
날아오르는 새떼여
내리치는 번개여.
-함민복, 선천성 그리움
더러운 물에서
연꽃이 피었다고
연꽃만 칭찬하지만
연꽃을 피울만큼
내가 더럽지 않다는걸 왜 몰라.
내가 연꽃이 사는
집이라는걸 왜 몰라.
-이장근, 왜 몰라
낮은 곳에 있고 싶었다
낮은 곳이라면 지상의 그 어디라도 좋다
찰랑찰랑 물처럼 고여들 네 사랑을 온몸으로 받아들일수만 있다면
한방울도 헛되이 새어 나가지 않게 할수만 있다면
그래, 내가 낮은곳에 있겠다는건
너를위해 나를 온전히 비우겠다는 뜻이다
나의 존재마저 너에게 흠뻑 주고싶다는 듯이다
잠겨 죽어도 좋으니 너는
물처럼 내게 밀려오라
-이정하, 낮은 곳으로
자다가 눈을 떴어
방안에 온통 네 셍각만 떠다녀
생각을 내보내려고 창문을 열었어
그런데 창문 밖에 있던 네 생각들이
오히려 밀고 들어오는거야
어쩌면 좋지.
-윤보영, 어쩌면 좋지
어둠 돌돌 말아 청한 저 새우잠
누굴 못 잊어 야윈 등만 자꾸움츠리나
욱신거려 견딜 수 없었겠지
오므렸던 그리움의 꼬리 퉁기면
어둠속으로 튕겨나가는 물별들
더러는 베게에 떨어지네
-박성우, 초승달
까맣게 잊었더니
하얗게 떠오르는 건.
-원태연, 어쩌죠
참 어이없기도 해라
마중물, 마중물이라니요
물 한 바가지 부어서
열길 물속
한길 당신속까지 마중갔다가
함께 뒤섞이는 거래요
올라온 물과 섞이면
마중물은 흔적도 없이 사라져버릴텐데
그 한바가지의 안타까움에까지
이름을 붙여주어야 했나요
철렁하기도해라
참 어이없게도.
-윤성학, 마중물
그해엔 왜 그토록 엄청난 눈이 나리었는지,
그 겨울이 다 갈무렵 수은주 밑으로 새파랗게 곤두박질치며 우르르 몰려가던 폭설.
그때까지 나는 사람이 왜 없어지는지 또한 왜 돌아오지 않는지 알지 못하였다.
한낮의 눈부라는 자꾸만 가난 주위로 뭉쳤지만
밤이면 공중 여기저기에 빛나는 얼음조각들이 박혀 있었다.
어른들은 입을 벌리고 잠을 잤다.
아이들은 있는 힘 다해 높은음자리로 뛰어 올라가고
그날 밤 삼촌의 마른 기침은 가장 낮은 음계로 가라앉아 다시는 악보 위로 떠오르지 않았다.
그리고 나는 그 밤을 하얗게 새우며 생철 실로폰을 두드리던 기억을 지금도 잊지 못한다.
-기형도, 삼촌의 죽음-겨울판화4
꽃이
피는건 힘들어도
지는건 잠깐이더군.
골고루 쳐다볼 틈 없이
임한번 생각할 틈 없이
아주 잠깐이더군.
그대가 처음
내속에 피어날 때처럼
잊는것 또한 그렇게
순간이면 좋겠네.
멀리서 웃는 그대여
산 넘어 가는 그대여.
꽃이 지는건 쉬워도
잊는건 한참이더군
영영 한참이더군.
-최영미, 선운사에서
내 피를 다 마셔요
내 살을 다 먹어요
그럼 나는 빈 껍데기만 남겠쬬
손톱으로 눌러 터뜨린
이처럼
당신한테라면 그래도 좋을것같은건
왤까
-양애경, 사랑
당신은 그냥
밤으로 오세요.
꿈으로 오세요.
눈길에 발자국 하나, 얼룩 하나 남기지 말고
내가 왔어요, 소리도 내지 말고.
그래야 내가 모르죠.
당신이 온것도 모르고
어느새 가버린것도 모르고
떠나는 사람이 없어야 남는 사람도 없죠.
행복이 없어야 슬픔도 없죠.
만남이 없어야 이별도 없죠.
첫눈이 온다는 날
기다림이 없어야 실망도 없죠.
사랑이 없어야 희망도 없죠.
잠시 왔다가 가는 밤처럼
잠시 잠겼다 깨어나는 꿈처럼
그렇게 오세요.
그렇게 가세요.
-황경신, 첫눈이 온다구요?
찾아 나서지 않기로 했다
가기로 하면 가지 못할일도 아니나
그냥 두고 보기로 했다.
그리움 안고 지내기로 했다
들려오는 말에 의하면 그대가 많이 변했다니
세월따라 변하는건 탓할 건 못되지만
예전의 그대가 아닌 그 낭패를
감당할 자신이 없기에
멀리서만 멀리서만 그대 이름을 부르기로 했다.
-이정하, 멀리서만
얼어붙은 호수는 아무것도 비추지 않는다
불빛도 산 그림자도 잃어버렸다
제 단단함의 서슬만이 빛나고 있을 뿐
아무것도 품지 않는다
헛되이 던진 돌멩이들,
세때 대신 메아리만 쩡쩡 날아오른다
네 이름을 부르는 일이 그러했다
-천장호에서, 나희덕
어느날 문득 걸음을 멈추고
뒤돌아서서, 언젠가의 그 시간을 되돌아 볼때
내가 그에게 후회는 아니었으면 좋겠다고
아픔이거나 슬픔이거나 갈증이거나,
그러한 아름다움까지는 아니더라도
-눈을 감으면, 황경신
살아오는 동안 어느 세월의 갈피에서 헤어진 사람을
어디선가 마주쳐 이름도 잊어버린채 서로를 알아보게 되었을때, 그때말이야.
나는 무엇으로 불릴까? 그리고 너는?
-달에게 들려주고 싶은 이야기, 신경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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