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연한 인생

2013. 9. 14. 16:21 from 시, 글귀

시간을 두고 천천히 생각해보면 뻔해지는게 이야기의 속성이었다. 그것들은 요셉이 언젠가 만들었던 이야기이거나 언젠가 했던생각, 심지어 언젠가 썼던 문장 중 하나일것이다. 아니라면 남들이 이미 해버린 이야기이거나 그들이 요셉보다 더 잘아는 이야기임이 틀림없다. 요셉은 문득 인쇄소에서 용지를 재단하는데 쓰이는 패턴이라는 금속형판을 떠올렸다. 언제부터인가 자신의 머릿속도 그것과 비슷해졌다는 생각이 들었다. 치수대로 종이를 찍어내고 나머지는 버리는 식으로 패턴을 반복하고 있는것이다.


의욕적인 계획을 늘어놓고 조언을 구하는 사람들은 오직 동의를 원할 뿐이었다. 충고를 구하는 사람들은 거의 언제나 희망을 기대했다. 비관이 신중함이고 냉정해야만 객관이라고 생각하는 요셉의 충고는 받아들여지기 힘들었다. 결국 시간만 아까웠다.


그녀는 옛날에도 남편의 죽음을 막지 못했는데, 이제 남편의 두번째 죽음 앞에서 아무 힘없이 서있게 된것이다. 이제 더이상 주검으로써 존재할수조차 없게 된 '늙은주검'의 죽음앞에 말이다.


난 잘해주는거 별로 좋아하지 않아. 무조건 어느 한 장소로 가는것도 싫고 어쩐지 가줘야할것만같은 기분도 싫어. 선택의 여지가 많은걸 자유롭다고하지. 대신 선택할만한게 모조리 싸구려라야해. 그래야 자유롭게 아무거나 선택할 수 있거든. 서른개도 넘는 카페가 모조리 싸구려라는게 이 거리의 매력이지.


나쁜짓엔 창의성이 있어야지. 세상에 없는것을 상상해야하는것이 크리에이티브한거니까. 다 있는걸 상상하면 그건 있는것을 몰랐다는것, 즉 무식밖에 더 되냐?


자기가 준 것을 다 계산해놓고 그걸 빚으로 생각하니까 문제지. 너는 뭘로갚을건데 하는 식이면 그게 맡겨놓은거지 선물이야? 내가 잘 해준거 잊지마. 이러는놈들도 조심하라구, 생색내거나 보상받으려고 하는건 진짜 주는게 아니야.


요셉이 역겨운것은 발언권이 없는 죽은자를 이분법적 틀에 집어넣어 루저로 만들어놓고 그를 동정함으로써 자신들이 공의의 편에 서있다고 믿는 자들의 기만적인 패턴이었다. 누군가를 약자로 만드는것은 강자가 아니라 바로 그처럼 강약을 나누는 틀이고 그리고 그 틀에 스스로 편입되는 자들이다.


어서 케이크에 불켜고 소원비세요.

내소원은 아무도 안들어줘. 왜요?

그동안 소원들어달라고 귀찮게 한 신이 하도많아서 사이가 좀 안좋아.

그럼 제가 들어드릴게요. 도경이 무심히 다시한번 손목시계를 보았다.

그 모습은 도경이 시계를 차고 섹스한다는 사실을 떠오르게했다.

아버지가 사십팔년전 오늘 뭘했는지는 알수 없지만 그 날로부터 열달전에는 섹스를 하고있었다. 요셉은 생일이라는게 비로소 실감났다.


약자의 피해의식이 때로 권력이 되는건 역설적으로 보수적인 이데올로기 때문이라는게 요셉의 생각이었다. 남에게 의존해야만 생존할수 있는 어린아이와 자기가 살고 있는사회의 부자처럼 되기를 꿈꾸는 가난한자들은 현재의 이데올로기가 지속되기를 원하므로 보수적일 수 밖에 없다. 또한 가난하다는이유로 남을 동정하는것이야말로 돈만을 기준삼는다는 점에서 물질만능주의라고 요셉은 생각했다. 노동의 신성함을 부르짖으면서 육체노동자를 하위계층으로 특별히 배려하는 태도역시 편견이었다. 장애인의 경우만 보더라도 그들은 시혜적인 온정을 원하는게 아니라 보통의 인격체처럼 자연스럽게 존중받을 권리를 원하는것이다..... 요셉의 생각이 맞다면 스스로 도덕적이고  정당하다고 믿는 주장일수록 배타적이 되기 쉬웠고 타인에 대한 폭력의 성격을 띠기 일쑤였다.


더 잘 속이려면 적당히 의심하도록 만들어야했다.


그들이 가는 세상의 끝은 s시가 아니었다. 열정이 끝나는 소실점이었다. 매혹은 지속되지 않으며 일정한 분량이 있다. 그 한시성이 그들을 더욱 열렬하게 만든것이었다. 류는 그들에게 매혹과 열정의 시간이 끝나버리는 날 자신이 혼자 비행기에 실려 돌아오리라는걸 예감했다.. 류는 자기기만의 부역보다는 상실을 택했다. 고통보다는 고독을 택한것이다.


고독은 그것을 받아들이는 사람에게 적요로운 평화를 주엇다. 애써 고독하지 않으려고 할때의 고립감이 견디기 힘들뿐이었다. 타인이란 영원히 오해하게되어있는 존재이지만 서로의 오해를 존중하는 순간 연민안에서 연대할수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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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웅냐돼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