루스와 저는 전쟁직후에 결혼했습니다. 선생님이 알고 있었는지 모르지만 우리는 강제 수용소에서 처음만난 사이입니다. 지금까지도 기억이 생생합니다. 1943년 10월 20일, 우리가 처음만난 날이지요. 저는 이미 수용서 생활을 한지 몇달째 된 무렵이었습니다. 늙으면 기억력이 떨어진다고들하지요. 다 틀린 말입니다. 저는 날이갈수록 과거가 더 생생하게 떠오르거든요. 어찌보면 아내가 부럽기도 합니다. 아내는 끔찍한 과거일랑 다 잊었을테니까요. 하지만 저는 날마다 그 기억들과 함께 삽니다. 밤마다 꿈속에서 그 치욕과 고통이 되살아납니다... 아내는 수용소에 이제 막 도착한것 같았습니다. 낡은 고동색원피스에 코트를 걸치고 있었죠. 코트는 새것이었지만, 오랜여행끝이라 많이 더러워진 상태였습니다. 아내는 진흙탕사이로 무거운 가방을 끌고 가느라 안간힘을 쓰고 있었어요. 아내의 검고 긴 머리가 아직도 기억이 납니다. 조금 헝클어지고 지저분하긴했지만, 그런건 아무 문제가 아니었습니다! 정말 아름다웠어요. 어찌된 영문인지 저와 루스와 눈이 마주쳤습니다. 물론 저는 운명이라고 믿었지만요. 선생님, 이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눈동자였어요. 그리고 그 눈에서는 두려움이라곤 도무지 찾아볼수가 없었죠. 끔찍하고 낯선곳에 뚝 떨어졌지만, 살아야겠다는 의지가 온몸에서 번뜩였어요! 그렇게해서 저는 사랑에 빠졌습니다. 그녀가 누군지 알아야겠기에, 다가가서 가방을 들어주겠다고 했죠. 루스는 괜찮다고 했어요. 하지만 그 날이후 머릿속에서 그녀 생각이 떠나지 않았어요. 몇주가 지나고 우린 다시 만났습니다. 그때의 우리 형편을 생각하면 미친소리라고 할지도 모르지만 선생님, 그날이 제 인생에서 가장 행복한 날이었습니다. 그날이후 우린 언제나 꼭 붙어다녔습니다.9개월동안 그렇게 함께 지냈죠. 그러다가 어느날 각자 다른 수용소로 보내지게 되었죠. 헤어지기 전에 서로 약속했습니다. 전쟁이 끝날때까지 살아남으면 상대방을 꼭 찾기로 말입니다. 어디서 만날지도 정했어요. 제 고향에 있는 어느 교회였습니다. 하지만 누가 살아남을지는 아무도 알수 없었죠. 도사선생님, 정확히 63년전 오늘이 우리 부부가 소용서 뜰에서 처음만난 날입니다. 그날이후 처음으로 아내가 저를 못알아봤습니다
....
오늘은 우리 부부의 첫만남을 기념하는 날이라 동네 유명 제과점에서 아내가 좋아하는 타르트와 빨간장미 꽃다발을 사들고 왔습니다. 방에 들어와서 해마다 그랬던것처럼 아내에게 축하인사를 건넸습니다. 그러고는 침대에 앉아 허리를 구부려 아내 이마에 입을 맞추려고 했는데.. 아내의 눈은 공포심으로 가득했습니다. 도사선생님, 아내 눈에 저는 완전히 남이었어요. 아내는 소리를 지르기 시작했습니다... 저는 어찌 할 바를 몰랐습니다. 아내에게 입맞춤을 하려했을뿐인데, 갑자기 소리를 질러댔으니까요. 아내를 안고 달래주려 했더니 제 따귀를 때리ㄷ군요. 그러더니 아내는 자리에서 일어나 복도로 뛰쳐나갔습니다. 선생님, 제 아내가 이렇게 사는 꼴을 더이상 볼수가없습니다.선생님, 제가 아는 아내는 오늘 죽었습니다.
난 매일같이 여기앉아 기다리지. 옷입는걸 도와줄 누군가를 기다리고, 아침식사를 기다리고 또 점심식사를 기다리지.
그런다음엔 내 방으로 돌아와 한숨 자거나 텔레비전에서 하는 지루한 드라마나 토크쇼를 보는거야. 그러고는 저녁식사를 기다리고. 젊었을때는 늘 바빴는데. 언제나 정신없이 바빴어. 날 위한 시간은 하나도 없었는데 지금은 널린게 시간이라니.
요새 떠도는 이야기에 따르면 고통조차 웃으며 견뎌야한다. 아니 애초에 고통을 고통으로 받아들여서도 안된다. 고통을 고통으로 여기는 부정적 태도를 갖는순간 우주의 에너지는 당신을 못보고 지나칠것이다. 그리고 성공과 실패에 대한 모든 책임은 오직 개인에게 있다. 치즈가 갑자기 사라져버리면 치즈가 왜 사라졌는지, 누가 갖고있는지 고민하지말고 재빨리 다른 치즈를 찾아나서야하고, 아무리 고난을 웃음으로 긍정하며 극복해도 인생이 잘 안풀린다면 그것은 당신의 긍정이 충분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오체가 불만족해도 웃으며 사는사람이 있는사람이 있는 세상에서 힘든내색, 남의 탓은 범죄다. 그것은 단지 주어진 조건, 그러니까 자연같은 이야기다... 이처럼 긍정적인 태도를 권유하는것은 좋은일이다. 문제는 그런 얘기들이 너무 많다는거다. 너무 많아서 당연하게 생각되고, 당연한것이 되다보니 같은 관점으로만 사태를 바라보게 된다. 그러나 절이 싫으면 중이 떠나야할때도 있지만 중이 절을 고쳐야 할때도 있는게 세상아닌가.
망각과 웃음. 선물을 받은채 저들은 여전히 고통받았지만 개처럼 웃을 수 있었다. 웃으면서 잊었고 잊으면서 웃었다. 그래서 개처럼 행복했다
직접적인 비용과 미래의 이익 앞에서 우리는 오늘 하지 못한것을 내일 할수 있을것이라 스스로에게 납득시키며 미루고 또 미룬다. 그렇게 해서 매일매일 계약을 갱신할 준비가 된 우리는 자신과 계약을 하지만 이 계약의 준수는 스스로 연기된다.
미래에 의지력을 행사할수 있으리라는 정신적인 예측이 우리를 끌어당기는 함정의 밑바닥에는 시간과 감정에 대한 관계가 존재한다. 오늘 해결하지못할 숙제가 내일을 덜 어려울것같고, 더 다루기 용이할것같으며 우리 스스로가 더욱 그에 대한 책임감을 가진듯이 보인다.
춤추라, 아무도 바라보고 있지 않은것처럼
사랑하라, 한번도 상처받지 않은것처럼
노래하라, 아무도 듣고있지 않은것처럼
살라, 오늘이 마지막 날인것처럼
어떤 행성 주위를 당신이 돌고있는가는 중요하지 않다
당신이 슬픔의 중심에 가닿은 적이 있는가
그래서 잔뜩 움츠러든적이 있는가
또한 앞으로 받을 더많은 상처때문에
마음을 닫은적이 있는가 알고싶다
나도 어느때 누군가를 위한 곤충이었겠지
당신도 어느때 나를위한 바람이었겠지
죽지 않을것이면 살지도 않았다
침묵할것이면 말하지도 않았다
떠나지않을것이면 붙잡지도 않았다
부서지지않으면, 미워하지 않을것이면
사랑하지도 않았다
옹이라고 부르지말라
가장 단단한 부분이라고
한대는 이것도여리디 여렸으니
다만 열정이 지나쳐 단 한번의 상처로
다시는 피어나지 못했으니
끊임없이 자신을 비우기에 언제나 새로우며
최상의 호기심으로 배움에 임하지만
무엇이 되려고 한적이 없기에 없음이라고 불리며
끝이없어 깊고 닿지않는곳이 없으며
앎의 세계로부터 벗어나있기에 모름이라고 불리며
보지않는 구석이 없고 듣지않는 소리가 없으며
그의 덕은 높고도 크나 겸손은 한없이 낮으며
우리의 사고가 끝나는곳 단어의 의미가 끝나는곳에서
어쩌면 만날수도 있는 그것은 실체로서의 사랑
제발 내가 그것을 극복했는지 묻지 말아주세요
난 그것을 영원히 극복하지 못할테니까요
지금 그가 있는곳이 이곳보다 더 낫다고 말하지 말아주세요
그가 고통받았다고 난 생각한적이 없으니까요
내가 느끼는것을 당신도 알고있다고 말하지 말아주세요
잃은 슬픔은 병이 아니니까요
내가 적어도 그와함께 많은 해들을 보냈다고 말하지 말아주세요
당신은 당신의 아기가 몇살에 죽어야한다는건가요?
내게 다만 당신이 내 아기를 기억하고있다고만 말해주세요
만일 당신이 그를 잊지 않았다면
신은 인간에게 극복할수있을만큼의 형벌을 내린다고는 ㅁ날하지 말아주세요
다만 내게 가슴이 아프다고 말해주세요
내가 낸 아이에 대해 말할수있도록 단지 들어만주세요
그리고 내 아이를 잊지말아주세요
제발 내가 마음껏울도록
지금은 다만 나를 내버려주세요
우리의 삶을 앗아가고 우리를 타인으로 남겨놓는 삶
우리에게 얼굴을 만들어주고 그 얼굴을 마모시키는 삶
별들만큼 사람이 많은것은
우리가 저마다 다른별에서 왔기 때문이지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마음의 병에 시달리고 무엇인가 손에 잡히지 않는것을 찾아헤메는지 모른다
그것은 우리가 세상에 태어난 순간부터 남의 기준에 맞도록 끊임없이 가지치기를 당했기 때문이다
정작 중요한것들은 잡초로 취급되어 잘려졌다
종교역시 다른 세속적인것들과 마찬가지로 우리에게 심리적인 위안을 주면서 배타적인 믿음을 심어주는것이 되어버렸다
신은 내가 신의 말을 듣는 그 귀로 내 말을 듣고 계신다
아, 나는 저 세계에 가고 싶었다 모든것들이 온곳으로 되돌아가고 무의 흰 세계만이 허공에 떠있는곳, 잃은것에 대한 아픔과 얻은것에 대한 희망마저도 시든곳. 내면의 지켜봄이 너무나 강렬해서 그 댇상마저 녹아 없어지는곳. 그곳에 이르고 싶었다
세상에서 가장 강한자는 돈에 길들여지지 않는 사람이다. 잃을것이 많으면 겁도 늘어난다. 반면 아무것도 가진것이 없는사람은 용감하게 옳은길을 갈줄안다. 어떤일을 하건 손해볼게 없는 까닭이다.
"아빠! 아빠 눈속에 내가 들어있어요!"
슬픈 아버지의 눈은 맑은 수면이 되어 채현을 비추었다
"채현이 눈속에도 내가 들어있구나1"
"채현아, 눈동자에 비친사람을 눈부처라 한단다.
아빠에겐 네가 바로 부처구나!
아빤 너를 부처삼아 살고싶다"
왜그럴까? 해는 왜 지기전에 하루중 가장 붉게 타오를까!
지기전에말이야..
그 소리에 새벽빛이 번지며 새순의 초록이 선명해지고 이슬이 영롱해지는 순간은...
-박소연, 눈부처
이별뒤에 듣는 음악은 아무리 유치해도 비수처럼 내 가슴을 에더라
사랑이 끝난 뒤에야 온세상이 법문으로 가득차있는줄 알겠더라
포도가 열린 포도나무가 그림을 그린다
밤에도 결코 잠들지않는
달의 입술을 지닌 얼굴을
1789년 시적된 혁명은 1793년들어 한계를 드러내고 있었다. 혁명은 피비린내를 맡으며 파행햇다. 로베스 피에르는 반대파를 닥치는대로 옥에 가두고 왕당파라는 의심이 들면 가차없이 사형에 처했다. 그러나 이 열렬한 루소의 숭배자도 당통을 처형한지 4개월이 못되어 단두대의 이슬로 사라지고 말았으니... 영국의 역사가 토머스 칼라일은 신음한다. "자유여, 너의 이름으로 무슨 죄가 저질러졌느냐?"
내슬픔은 독신을 꿈꾸는 몽상가
신문을 보며 우는 어리석은 휴머니스트다
주일이면 교회에 가고
월말이면 절집에 나가는
내 슬픔은 죄질이 나쁜 사상범
왜 슬픔은 하나의 사상으로 자리잡지 못하였는가?
오지않는 너를 기다리다가
나는 알게 되었지
이미 네가
투명인간이 되어
곁에 서있다는것을
그래서 더불어 기다리기로한다
가까스로 저녁에서야
두척의 배가 미끄러지듯 항구에 닻을 내린다
벗은 두배가
나란히 누워
서로의 상처에 손을대며
무사하구나 다행이야
응, 바다가 잠잠해서
울지마라 외로우니까 사람이다
살아간다는것은 외로움을 견디는 일이다
공연히 오지않는 전화를 기다리지 마라
새들이 나뭇가지에 앉아있는것도 외로움때문이고
네가 물가에 앉아있는것도 외로움때문이다
산그림자도 외로워서 하루에 한번씩 마을을 내려온다
종소리도 외로워서 울려퍼진다
사람은 서로 아무리 사랑하고 좋아하고 곁에 오래있어도 결국 혼자잖아요? 그렇게 좋아한다면 왜 서로 짝 하고 하나로 되지 않을까요? 글쎄, 글쎄 하지만 하나가 된다면 또다시 하나라서 외로울거야
너를 대하면 나는 퍽이나 좋은 음악을 듣는기분.
그래서 너를 만날때 내안의 나는 춤을추게 돼.
우아하고도 발랄하게
너는 내안의 나를 춤추게해
너는 나를 춤추게해
내 안의 한송이 꽃마저도
나는 이제 너에게도 슬픔을 주겠다
사랑보다 소중한 슬픔을 주겠다
겨울밤 거리에서 귤 몇개 놓고
살아온 추위와 떨어온 할머니에게
귤값을 깍으면서 기쁘허던 너를 위하여
나는 슬픔의 평등한 얼굴을 보여주겠다
내가 어둠속에서 너를 부를때
단한번도 평등하게 웃어주질않은
가마니에 덮인 동사자가 얼어죽을때
무관심한 너의 사랑을 위해
흘릴줄 모르는 너의 눈물을 위해
나는이제 너에게도 기다림을 주겠다
이세상에 내리던 함박눈을 멈추겟다
보리밭에 내리던 봄눈들을 데리고
추위에 떠는 사람들의 슬픔에게 다녀와서
눈그친 눈길을 너와함께 걷겠다
슬픔의 힘에대한 이야기를 하며
기다림의 슬픔까지 걸어가겠다
너구리 잭은 또 싸웠어..그러다가는 달아나 숨고, 또다시 나와서 싸우고.. 너도 알다시피 너구리 잭은 평생 싸우는것밖에 해온게 없어. 이제 그놈이 갖고있는 유일한 재산이 바로 그 찬송가 열쇠란 말이다. 네 보기에 너구리 잭이 심통을 부리는것처럼 보였다면, 그건 아마 이제 싸울게 아무것도 남아있지 않아서일거야. 잭은 그것밖에 할줄 모르거든.
사람을 돕더라도 도움받는것을 견딜수 있는 사람만 도와야한다. 도움받는것을 견디지 못하는 사람은 나중에 가면 자기를 도와줬다고 나를 원망한다.
그는 상 뜨뻬쩨르부르그 고아원 시절부터 나를 미워한다. 이유는 간단하다. 언제나 나에게 신세만 지고있기 때문이다. 내가 달려와 자기를 구해주면 줄수록 녀석은 나를 점점 더 미워했다. 빚은 쌓여만가는데 그것을 갚을길이 없기 때문에. 사람은 타인에 대해서 많은것을 용서할수 있다. 하지만 자기를 도와준것에 대해서는 용서를 할수 없다. 이것이 바로 내가 소년원에서 배운 두번째 교훈이다.
사정이 이러하다보니 막상 승리가 닥쳐오면 사람들은 지표를 잃고 갈팡질팡하면서 대개는 익히 알고있는 <정상상태>로 돌아가기 위해 서둘러 패배를 준비하기 쉽상이다.
외로움이라는것은 결코 익숙해질수있는 종류의 감정이 아니다. 시간이 흐를수록 가부키 배우의 분장처럼 더욱더 짙어져서 어느날 갑자기 낯설기 짝이없는 얼굴을하고 슬그머니 목덜미에 차가운 손을 올려놓는것이 외로움의 속성인것이다.
닮았기 때문이다. 닮았기 대문에, 우리는 어떻게하면 서로에게 가장 효과적으로 상처줄수있는지 너무도 잘안다. 상처주고 상처입는 상대의 마음속도 제 속을 들여다보듯 훤히 읽어냈기때문에 항상 상대에 대해 연민을 지닐수밖에 없었다. 우리는 둘다 위선적이라기보다는 위악적이었고, 막말을 하며 자신을 상처입힐수있는 종류의 인간이엇으며, 겉보기와는달리 마음이 약했다.
우리의 스무살에민주화운동시절을 잠깐 기억하고 말았습니다. 연애는 금기였지요. 우리는 커다란 사랑만을 강요받았습니다. 글쎄요, 누구였을까요. 강요의 주체는 누구였을까요. 선배? 시대? 조직? 혹은 독재자? 아니면 나자신?
나는 자신이 없었던겁니다. 내가 사랑할수 없었음이 절망적이었기때문에. 사랑한다는 착각을 사랑이라고 생각했었기때문에.
얼마전 이야기 끝에 같은 어려움을 겪는데도 왜 어떤이는 더 성숙해지고 어떤이는 소위 망가지는지 토론을 벌인 적이 있었습니다. 그때 한사람이 말했지요. 가장 중요한것은 어려움의 본질을 직시하려고 하는가 아닌가의 차이라고 말입니다. 어려움의 본질. 직시, 그래요 압니다. 안다고 하는 저를 그냥 좀 놔두십시오. 안다고 말하고 싶습니다.
불행을 당사는 사람에게 가장 큰 폭력이 비난이지요. 그래서 불행한사람들이 가장 힘든것이 수치심이라고합니다.. 불행보다 힘든것이 수치심이라고 말이지요.
되돌아보면 진정한 외로움은 언제나 최선을 다한후에 찾아왔습니다. 그것은 자기 자신의 본질을 직시하지 않으려고 이리저리 거리를 기웃거리는 외로움과는 다른것입니다. 자기자신에게 정직해지려고 애쓰다보면 언제나 외롭다는 결론에 다다릅니다.. 친구가 말했습니다. 당하면 외로움이고 선택하면 고독이라고, 우리는 한참 웃었습니다만 외로우니까 글을쓰고, 외로우니까 좋은 책을 뒤적입니다. 외로우니까 그리워하고 외로우니까 다른사람의 고통을 이해합니다.
왜냐하면 우리모두가 완전을 향해 나아가고자할때, 불완전만큼 더 큰 동력은 없기때문입니다.
사랑이라는 이름으로 학대가 일어날수있고, 비겁한 위인과 순결한 배반자가 있다는것도 알게되었습니다.
인간이 지니고 있는 그런 속성들에 대해 우리는 소위 비인간적이라는 형용사를 붙이곤 한다. 솔직히 말하면 그것은 비인간적인 속성이 아니고, 인간속에 있다고 인정하기싫은 부분일것이다.
광학적으로 보면 흰색이란 우리가 바라보는 사물의 표면위에 빛이 100%반사될때 나타나는 색이다. 즉 흰색으로 보이는 사물은 자신의 색을 보여주지 않는다는 말이다. 스스로 색을 감추고 오로지 빛만을 보여주는색, 그것이 흰색이다.
흔ㅅ히 사실주의 화가라고 불리는고야가 이 침묵의 기간동안 본것은 오히려 사실너머에서나 볼수있는 환상과도 같은 진실이었을것이다. 그리고 인간내면에 자리하고있는 어두운 진실들은 그의 손에의해 마치 사실인것처럼 그려졌다. 그 그림속에서는 아버지가 제 자식을 잡아먹고있고 노인의 뒷전에는 항상 죽음이 따라다니고있으며, 군중은 사탄의 설교에 영혼을 팔고잇다.
세계는 절망스럽지만 사람들이 이 절망스러운 세계속에서 완전히 불행해질수없는이유는 신이 우리에게 괴로워할 권리를 스스로 사들이는 법을 아름다움이라 가르쳤기 때문이다.
그때 저를 오싹하게 만든것은 나약하고 가엾은 소피메이슨의 유령이 아니라 아무것도 보이지않는 눈, 아무것도 들리지 않는 귀, 자기 자랑만 늘어노는 요란스러운 목소리였습니다. 소피를 잘 알지못하는 우리조차도 소피가 곁에있다는 사실을 느꼈는데 그 남자는 전혀 신경을 쓰지않고 계속 자기 얘기만 떠들어대고 있었습니다. 피츠버그에서 큰돈을 벌어 성공했다는 자랑만을 끊임없이말이죠.
이 나라 미국의 가장 위대한점은 가장 부유한 소비자들도 본질적으로는 가장 가난한 소비자들과 똑같은것을 소비하는 전통을 세웠다는것이다. 텔레비전 광고에 등장하는 코카콜라는 엘리자베스 테일러도 미국 대통령도 마신다는것을 알수 있으며, 당신들도 마찬가지로 콜라를 마실 수 있다. 콜라는 그저 콜라일뿐, 아무리 큰 돈을 준다 하더라도 길모퉁이에서 건달이 빨아대고있는 콜라보다 더 좋은 콜라를 살수는 없다.
진정으로 원하는 일을 위해 특별히 시간을 내지않는다면 늘 해야할일이 넘칠것이고 늘 너무나 바쁠것이다.
만약 어떤 방안에 대해 90%의 사람들이 찬성한다면 저는 절대로 그 방안을 채택하지 않습니다. 곧바로 쓰레기통에 버리죠. 이미 다른사람이 그것을 시작했겠죠. 남들이 시작하지 않은 일을 저는 시작합니다. 그게 바로 저입니다.
언제까지 스스로 자신의 가능성을 죽일것인가?
언제까지 자기자신을 의심할것인가?
언제까지 자기자신을 낮출것인가?
"내가 알렉산더. 바로 이나라의 대왕이다."
"내가 디오게네스. 바로 개요."
"너는 내가 두렵지 않느냐?"
"당신은 좋은사람인가요 나쁜사람인가요?"
"나는 좋은사람이오."
"내가 좋은사람을 왜 두려워해야한단 말입니까?"
알렉산더 대왕은 디오게네스에게 소원을 물었다.
"지금 당신이 내 햇빛을 가리고있으니 비켜주시오."
가슴으로 살아라
세상에서 가장 긴 거리는 가슴과 머리의 30cm. 머리에서 가슴까지 도달하기위해 평생의 시간이 걸리는 사람도 있다.
우리는 나이가 먹었다던가 건강이 나쁘다거나 가난하다던가 하는 여러이유에서 아직 죽음이 오지 않았는데도 은퇴자의 삶을 살려한다.
우리는 다르게 행동할수 있을때 비로소 자유롭다.
너는 살아있는한 죽지않았고 죽으면 존재하지 않으니 죽음이란건 아무것도 아니다.
시간은 흘러가고 모든것은 변하기 마련이다
언제까지 행복하지도않을것이며 언제까지 불행하지도 않을것이다
돌이켜보니 그들의 삶은 하루하루가 절정없는 위기였고 멈추지않는 롤러코스터였다. 불안속에서 반짝이는 행복으로 그들은 일생의 슬픔을 견뎠다. 하지만 그들의 짧은 명랑은 아주 오랫동안 반짝거렸다.
암사자는 유전된 본능으로 사냥을 한다. 자신의 행위를 사냥이란 말로 지칭하지도, 다른 약한 동물들을 잡아먹는 행위가 과연옳은것인지 곰곰히 생각해보지도 않는다.
갈데없는 그대의 마음이 하늘위에서
부딪치고 무너져 내리던 날이었다
나는 다른 하늘을 알지 못하여
고스란히 슬픔속에 발이 묶였다
그러자 아주 오랫동안
이별을 그리워하고있었다는 생각이 들었다
나의 뿌리는 기억에 매달렸다 그러나
사랑이 영원하지 않은것처럼
이별도 한순간이었다
사실 나는 여러분에게 갔을때 약하였고 두려워서 몹시 떨엇습니다. 그리고 내가 말을 하거나 설교를 할때에도 지혜롭고 설득력있는 언변을 쓰지않고 오로지 하나님의 성령과 그의 능력만을 드러내려고 하였습니다. 그것은 여러분의 믿음이 인간의 지혜에 바탕을 두지 않고 하나님의 능력에 바탕을 두게 하려는 것이었습니다.
주여, 살면서 제게 좋은일들이 일어나는것은 제가 그것들을 받을 자격이 있기때문이라는걸 깨닫게 하소서. 당신의 진리를 좆고자 저를 추동하는 힘이 성인들을 추동했던것과 같은것임을, 제가 품는 의심이 성인들이 품었던 의심과 같은것임을 저의 나약함이 그들의 나약함과 다르지 않다는것을 받아들일수있도록 제게 겸허함을 허락하소서,아멘.
세상에 절대적인 진리는 없다
누구도 진리를 독점할 수 없다
그러나 동시에 세상에는 절대적인
보편성을 띠는 윤리가 있다
대서양? 그ㅜ 땅에 원래 살던 사람들에게 대서양은 서쪽바다가 아니고 동쪽바다였는데? 신대륙? 그 땅이 어느날 갑자기 바다속에서 떠오른것도 아닌데 웬 신대륙? 인디언? 그사람들은 인도에 사느 사람들과는 아예 종자가 다른데? 보호구역? 사냥할 들소도 멸종당하고 농사는 꿈도 못꾸고 우라늄 광산에 진흙탕, 모래바람만 날리는 땅에 가둬놓고 무슨 보호?
인간은 자기 집단의 특별한 문화를 보편적인 진리로 주장하는 아주 못된 버릇을 가지고 있다. 그런 인간들은 문화와 자연을 구분할줄 모른다. 자신들의 문화에서 옳다고 인정되는것들은 자연스러운것이고, 그렇지않은것은 자연에서 벗어난것이된다. 문화가 끝없이 변화한다는 사실도 그들에겐 아무영향을 끼치지 못한다. 나와 다른 남을 인정하지 못하는 그 못된버릇은, 인류의 역사 내내 셀수없는 폭력을 낳았다. 다름을 틀림으로 규정하기 시작하면 그때부터 다름은 교정의 대상이 된다. 피부색이 다르면 인간이 아니라 짐승이 되었고, 종교가 다르면 역시 인간이 아니라 악마가 되었다.
그대가 받은 꽃다발. 무심코 보면 화려하지만 사실은 꽃들의 토막시체나 다름이 없다.
남을 비방하길 좋아하는 족속들은 대개 자신이 완벽하다는 착각속에 빠져서 산다. 자신의 결함이 드러나면 어떤 구실을 붙여서라도 합리화시킨다. 까짓거, 인정해주자. 그는 나름대로 우주의 중심일테니까.
세상어디에도 기쁨과 행복만으 가져다주는사람은 존재하지않는다. 세상에 존재하는 모든 사람은 언제나 그 크기와 깊이에 비례하는 고통을 수반하고있다.
하찮은것들을 소중하게 여기지 못하면 작은일에도 행복을 느끼는 성품을 가질수없다. 작은일에도 행복을 느끼는 성품을 가질수 없다면 그는 한낱 걸어다니는 욕망덩어리에 불과하다.
쓰레기같은인간도 자신이 쓰레기같은 인간이라는 사실을 자각하면 쓰레기같지않은 인간으로 격상된다. 그러나 대부분의 스레기같은 인간은 자신이 쓰레기같다는 사실을 절대로 인정하지않기때문에 평생을 쓰레기같은 인간으로 살수밖에 없는것이다.
진실로 사랑했으나 미처 고백하지 못한 낱말들은 모두 하늘로가서 별빛으로 돋아나고 역시 진실로 사랑했으나 이별끝에 흘린 눈물들도 모두 들판으로 가서 들꽃으로 피어난다. 우리가 사는세상, 아름다운것들은 모두 피맺힌 슬픔 한모금씩을 간직하고있다.
폭포같은 마음을 지닌채 호수같이 살려고 애를쓰다가 바다로 가고야 말았다.
구름이 하늘에서 재주를 부립니다
어머니, 저것좀 보아, 구름이 흰곰같네
햇볕은 따스하게 마루를 비춥니다
일하는 엄마손을 아가는 흔듭니다
서로가 다르면서 서로가 똑같기를 하나님의 이름으로 종용한다.
생각은 뇌안의 범주에 속해있고 마음은 심안의 범주에 속해있다. 대상과 내가 이분되면 생각이고 대상과 내가 합일되면 마음이다.
길이있어 내가 가는것이 아니라 내가 감으로써 길이 생기는것이다.
그 어떤 분별의 자리에도 마음을 묶어두지 말라.
나는 과거라는 시간속에서 그대의 나이를 경험했고 그대는 미래라는 시간속에서 나의 나이를 경험할것이다.
그 여자 흐린별을 보던 창을 두고
별에 녹아버린 눈동자를 그냥 두고
어느날 잠에서 깨어 너의 등을 오랫동안 바라본적이 있었다. 손을 내밀어도 닿지못할 아득한 거리
별은 밝았고 바람은 광속으로 밤하늘의 가장자리를 훑고 지나갔다
너의 숨소리는 봄날의 꽃피던 나무아래에 켜켜이 쌓여있던데
범죄는 예술같은거다. 경지에 이르려면 어릴적부터 시작해야한다.
한송이 국화꽃을 피우기 위해서 봄부터 소쩍새는 그렇구 우렀나보다
욕심이 갈등을 낳고 번뇌를 낳으며 욕심이 고통을낳고 집착을 낳으며 집착은 무도를 낳소 무도는 파멸을 낳는다
모든천사들도 평범한 사람의 모습으로 나타나고 모든 악마들도 평범한 모습으로 나타날것이다. 예수가 다시 태어난다면 아마도 그는 내곁에 살고잇는 이웃 아저씨의 무습으로 태어날것이며 부처도 마찬가지일것이다. 그러므로 모든 천사들은 우리 주변에 있다. 우리 이웃들의 얼굴에, 이 복잡한 속세지옥을 견디며 살아가는 우리들의 어깨위에 천사는 언제든지 그 날개를 접고 쉬기위해 기다리고 있는건지도 모른다. 우리가 조금 마음을 열어 우리 주변을 돌아볼수 있다면, 우리는 모두 보이지 않는 날개를 지닌 천사가 될것이다.
우리도 떨어집니다 여기 이손도 떨어집니다
그대여 보시라, 만상이 떨어지는것을
절벽아래에서 피는 꽃은 유난히 흔들림에 민감하다고 한다
사랑은 모든 병을 이기는 힘이 아니라 어떤 병도 두려워하지 않게되는 위안이다
우리는 너무나 가난해서 우리가 믿을수있는건 우리 자신의 노력밖에는 없다는 말을
잔느는 자기도 모르게 로잘리와 자신, 둘의 생애를 견주어 보았다. 누가 더 행복했는지 불행했는지. 가슴에는 아무런 쓰라림도 남아있지 않았다. "생각해보면 인생은 사람들이 생각하는것만큼 그렇게 행복한것도 불행한것도 아닌가봐요. 그렇지요, 마님?"
장애를 가진 사람들의 신비는 그들이 권력보다 진정하 사랑의 관계를 더 갈망한다는것이다. 그들은 갈채를 보내거나 승ㅈ인을 시켜주는 집단에서 안주하는 삶에 집착하고 매달리지 않는다. 가장 중요한것을 갈망한다.
당신을 죽이기전에 이렇게 그대에게 입맞췄지.
이제 나 죽어가면서 어둠속에서 그대에게 입맞춤을
한번더 입맞춤...
아! 또다시 입맞춤을....
이쯤되면 사회적 약자라는 그럴싸한 이름을 붙이는것도 참 허망한 일이 되고만다. 우리는 모두 자기좋자고 정의니 신이니 도덕이니 그런것들을 끌어다가 자기이기심을 감추며 살아가는 존재가 아닌가. 단지 오늘 내가 이 정치판에서 재수없어 쓰러졌지만, 다음번엔 더 가혹하게 너를 쓰러뜨릴텐데, 누구를 원망할수있으랴.
승패는 무엇이 진실이냐가 아니라 무엇을 진실로 만들었느냐
최소한 그들에게 재판이란, 분쟁속에 내재한 진실을 규정하고 정의를 실천하는 과정이 아니라 분쟁밖에서 진실을 만들어내고 여기에 비추어 무엇인가를정의라고 실천하는 과정일 뿐이다.
강포수는 일찍이 귀녀가 이같이 자신 가까이 있는것을 느낀적이 없다. 가랑잎더미위에 쓰러뜨렸을적에는 귀녀는 강포수에게 멀고 먼 존재였다. 강포수를 좋아하건 싫어하건 그것은 이제 아무런 의미도없다. 저주받을 악녀이건 축복받은 선녀이건 그것도 강포수하고는 관계가 없었다. 다만 거기에 그여자가 있다는것과 그여자를위해 서러워해줄 단 한사람으로써 자기가 있다는것, 그것뿐이었다.
우리의 자아는 인정받고싶은 욕구로 늘 허기져있는 상태이다. 이러한 욕구가 부분적이라도 채워진 후에야 비로서 나아닌 다른것으로 관심을 돌릴수있다. 그러므로 타인에 대하여 관대한 사람은 오직 자기자신을 좋아하는 사람뿐이다. 자존감이 높은 사람들은 같이 어울리기 쉽다. 자기의 기본적인 욕구가 충족되어있기때문에 다른사람의 필요를 생각해줄 정신적인여유가있는것이다.
인간은 전부 선하거나 악하지 않다. 한사람안에는 다양한 면들이 공존한다. 그리고 그중 우리가 보여주는 부분은 다른사람이 우리에게 끌어내는 부분이다. 내가 다른사람을 판단하는순간 다른사람도 나를 판단할 근거를 얻는다. 다른사람에게 좋은인상을 남기려고 하지마라. 그냥 그사람에게 내가 좋은인상을 받았다는것을 알리는편이 낫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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