큰 꿈을 갖고 입사한 사람들의 첫 번째 좌절의 경험은 선임과의 커뮤니케이션에 대한 절망감에서 올 거예요. 관성에 따라 판단하는 게 일상이 된 사람들에게 새로운 아이디어란 치기어린 발상이거나, 성가신 노력이거나, 주제넘은 의욕이죠.
들어주는 귀. 자기의 권위를 살짝 미루고, 신입의 이야기에 귀를 기울인다. 바둑을 수담이라고도 한다. 내가 놓는 한 수 한 수는 곧 내 뜻이고 말이 된다. 한 판의 바둑엔 수많은 대화가 있고, 갈등이 있다. 시비가 생기고, 화해와 양보가 있다. 이기기위해 목청을 높이는 수도 있고, 엄살을 부리는 수도 있다. 이기기 위해서... 승리하기 위해선, 상대의 이야기에 귀를 기울여야 한다. 내 말만 해서는 바둑을 이길 수 없다.
있는 그대로 보고 판단하고 즐거운 일 있으면 웃고 슬픈일 있으면 울고. 자꾸 사람을 파악하려고 애쓰다가는 자기 시야에 갖히는 거거든. 남을 파악한다는게 결국 자기생각 투사하는 거라고.그러다 자기 자신에게 속아 넘어가는거야.
내가 회사생활 하면서 가장 좋았던게 뭔지 알아? 술을 배운거야. 힘들때 이녀석이 있어줬고, 외로울때 이걸로 견딜 수 있었어. 좀 더 쉽게 남과 사귀고, 좀 더 편하게 상사를 대할 수 있었지. 가장 후회하는것도 술을 배운거지. 외로운 거 이놈한테 풀고, 힘든 거 이거 마시고 넘어가고, 원치 않는 놈한테 과도하게 굽신거리게 만든 게 다 이 술이라고. 일상이란걸 즐겨 본적이 없어. 심심한 걸 즐겨 본적도, 한가한걸 누려 본적도, 고민이 있으면 고독해질 필요도 있는데 그러질 못했어.
싫어하는 여자가 선물 안긴다고 무조건 좋아해주냐? 받아주면 그런여자가 넌 좋아? 우리 팀 오늘 한 건 했다. 결국 합의했다고. 선물을 주거나 윽박지르거나 힘겨루기를 해서 얻은 게 아냐. 상대도 나만큼은 머리가 있는거고, 두려움이 있는거고, 욕심이 있고, 의심이 있지.그걸 하나하나 풀어내는거야. 나도 당신과 같습니다~ 하면서. 그렇게 마음을 툭 열고 대화하면 언젠가 서로 맞닿는 지점이 생기는거지. 억지로 억지로 밀어붙인다고 되는 게 아니라고. 너는 지금 사랑받고싶어서 사랑받지 못할 방법만 쓰고 있는거야
'분류 전체보기'에 해당되는 글 32건
- 2014.06.07 미생
- 2014.01.15 ㅎㅎ
- 2014.01.14 브람스를 좋아하세요
- 2014.01.14 능소화
- 2014.01.14 한줄도 길다
- 2014.01.14 네가 누구든 얼마나 외롭든
- 2014.01.14 하느님의 보트
- 2014.01.14 두근두근 내인생
- 2014.01.14 님의 침묵
- 2013.09.14 태연한 인생
루스와 저는 전쟁직후에 결혼했습니다. 선생님이 알고 있었는지 모르지만 우리는 강제 수용소에서 처음만난 사이입니다. 지금까지도 기억이 생생합니다. 1943년 10월 20일, 우리가 처음만난 날이지요. 저는 이미 수용서 생활을 한지 몇달째 된 무렵이었습니다. 늙으면 기억력이 떨어진다고들하지요. 다 틀린 말입니다. 저는 날이갈수록 과거가 더 생생하게 떠오르거든요. 어찌보면 아내가 부럽기도 합니다. 아내는 끔찍한 과거일랑 다 잊었을테니까요. 하지만 저는 날마다 그 기억들과 함께 삽니다. 밤마다 꿈속에서 그 치욕과 고통이 되살아납니다... 아내는 수용소에 이제 막 도착한것 같았습니다. 낡은 고동색원피스에 코트를 걸치고 있었죠. 코트는 새것이었지만, 오랜여행끝이라 많이 더러워진 상태였습니다. 아내는 진흙탕사이로 무거운 가방을 끌고 가느라 안간힘을 쓰고 있었어요. 아내의 검고 긴 머리가 아직도 기억이 납니다. 조금 헝클어지고 지저분하긴했지만, 그런건 아무 문제가 아니었습니다! 정말 아름다웠어요. 어찌된 영문인지 저와 루스와 눈이 마주쳤습니다. 물론 저는 운명이라고 믿었지만요. 선생님, 이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눈동자였어요. 그리고 그 눈에서는 두려움이라곤 도무지 찾아볼수가 없었죠. 끔찍하고 낯선곳에 뚝 떨어졌지만, 살아야겠다는 의지가 온몸에서 번뜩였어요! 그렇게해서 저는 사랑에 빠졌습니다. 그녀가 누군지 알아야겠기에, 다가가서 가방을 들어주겠다고 했죠. 루스는 괜찮다고 했어요. 하지만 그 날이후 머릿속에서 그녀 생각이 떠나지 않았어요. 몇주가 지나고 우린 다시 만났습니다. 그때의 우리 형편을 생각하면 미친소리라고 할지도 모르지만 선생님, 그날이 제 인생에서 가장 행복한 날이었습니다. 그날이후 우린 언제나 꼭 붙어다녔습니다.9개월동안 그렇게 함께 지냈죠. 그러다가 어느날 각자 다른 수용소로 보내지게 되었죠. 헤어지기 전에 서로 약속했습니다. 전쟁이 끝날때까지 살아남으면 상대방을 꼭 찾기로 말입니다. 어디서 만날지도 정했어요. 제 고향에 있는 어느 교회였습니다. 하지만 누가 살아남을지는 아무도 알수 없었죠. 도사선생님, 정확히 63년전 오늘이 우리 부부가 소용서 뜰에서 처음만난 날입니다. 그날이후 처음으로 아내가 저를 못알아봤습니다
....
오늘은 우리 부부의 첫만남을 기념하는 날이라 동네 유명 제과점에서 아내가 좋아하는 타르트와 빨간장미 꽃다발을 사들고 왔습니다. 방에 들어와서 해마다 그랬던것처럼 아내에게 축하인사를 건넸습니다. 그러고는 침대에 앉아 허리를 구부려 아내 이마에 입을 맞추려고 했는데.. 아내의 눈은 공포심으로 가득했습니다. 도사선생님, 아내 눈에 저는 완전히 남이었어요. 아내는 소리를 지르기 시작했습니다... 저는 어찌 할 바를 몰랐습니다. 아내에게 입맞춤을 하려했을뿐인데, 갑자기 소리를 질러댔으니까요. 아내를 안고 달래주려 했더니 제 따귀를 때리ㄷ군요. 그러더니 아내는 자리에서 일어나 복도로 뛰쳐나갔습니다. 선생님, 제 아내가 이렇게 사는 꼴을 더이상 볼수가없습니다.선생님, 제가 아는 아내는 오늘 죽었습니다.
난 매일같이 여기앉아 기다리지. 옷입는걸 도와줄 누군가를 기다리고, 아침식사를 기다리고 또 점심식사를 기다리지.
그런다음엔 내 방으로 돌아와 한숨 자거나 텔레비전에서 하는 지루한 드라마나 토크쇼를 보는거야. 그러고는 저녁식사를 기다리고. 젊었을때는 늘 바빴는데. 언제나 정신없이 바빴어. 날 위한 시간은 하나도 없었는데 지금은 널린게 시간이라니.
요새 떠도는 이야기에 따르면 고통조차 웃으며 견뎌야한다. 아니 애초에 고통을 고통으로 받아들여서도 안된다. 고통을 고통으로 여기는 부정적 태도를 갖는순간 우주의 에너지는 당신을 못보고 지나칠것이다. 그리고 성공과 실패에 대한 모든 책임은 오직 개인에게 있다. 치즈가 갑자기 사라져버리면 치즈가 왜 사라졌는지, 누가 갖고있는지 고민하지말고 재빨리 다른 치즈를 찾아나서야하고, 아무리 고난을 웃음으로 긍정하며 극복해도 인생이 잘 안풀린다면 그것은 당신의 긍정이 충분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오체가 불만족해도 웃으며 사는사람이 있는사람이 있는 세상에서 힘든내색, 남의 탓은 범죄다. 그것은 단지 주어진 조건, 그러니까 자연같은 이야기다... 이처럼 긍정적인 태도를 권유하는것은 좋은일이다. 문제는 그런 얘기들이 너무 많다는거다. 너무 많아서 당연하게 생각되고, 당연한것이 되다보니 같은 관점으로만 사태를 바라보게 된다. 그러나 절이 싫으면 중이 떠나야할때도 있지만 중이 절을 고쳐야 할때도 있는게 세상아닌가.
망각과 웃음. 선물을 받은채 저들은 여전히 고통받았지만 개처럼 웃을 수 있었다. 웃으면서 잊었고 잊으면서 웃었다. 그래서 개처럼 행복했다
직접적인 비용과 미래의 이익 앞에서 우리는 오늘 하지 못한것을 내일 할수 있을것이라 스스로에게 납득시키며 미루고 또 미룬다. 그렇게 해서 매일매일 계약을 갱신할 준비가 된 우리는 자신과 계약을 하지만 이 계약의 준수는 스스로 연기된다.
미래에 의지력을 행사할수 있으리라는 정신적인 예측이 우리를 끌어당기는 함정의 밑바닥에는 시간과 감정에 대한 관계가 존재한다. 오늘 해결하지못할 숙제가 내일을 덜 어려울것같고, 더 다루기 용이할것같으며 우리 스스로가 더욱 그에 대한 책임감을 가진듯이 보인다.
춤추라, 아무도 바라보고 있지 않은것처럼
사랑하라, 한번도 상처받지 않은것처럼
노래하라, 아무도 듣고있지 않은것처럼
살라, 오늘이 마지막 날인것처럼
어떤 행성 주위를 당신이 돌고있는가는 중요하지 않다
당신이 슬픔의 중심에 가닿은 적이 있는가
그래서 잔뜩 움츠러든적이 있는가
또한 앞으로 받을 더많은 상처때문에
마음을 닫은적이 있는가 알고싶다
나도 어느때 누군가를 위한 곤충이었겠지
당신도 어느때 나를위한 바람이었겠지
죽지 않을것이면 살지도 않았다
침묵할것이면 말하지도 않았다
떠나지않을것이면 붙잡지도 않았다
부서지지않으면, 미워하지 않을것이면
사랑하지도 않았다
옹이라고 부르지말라
가장 단단한 부분이라고
한대는 이것도여리디 여렸으니
다만 열정이 지나쳐 단 한번의 상처로
다시는 피어나지 못했으니
끊임없이 자신을 비우기에 언제나 새로우며
최상의 호기심으로 배움에 임하지만
무엇이 되려고 한적이 없기에 없음이라고 불리며
끝이없어 깊고 닿지않는곳이 없으며
앎의 세계로부터 벗어나있기에 모름이라고 불리며
보지않는 구석이 없고 듣지않는 소리가 없으며
그의 덕은 높고도 크나 겸손은 한없이 낮으며
우리의 사고가 끝나는곳 단어의 의미가 끝나는곳에서
어쩌면 만날수도 있는 그것은 실체로서의 사랑
제발 내가 그것을 극복했는지 묻지 말아주세요
난 그것을 영원히 극복하지 못할테니까요
지금 그가 있는곳이 이곳보다 더 낫다고 말하지 말아주세요
그가 고통받았다고 난 생각한적이 없으니까요
내가 느끼는것을 당신도 알고있다고 말하지 말아주세요
잃은 슬픔은 병이 아니니까요
내가 적어도 그와함께 많은 해들을 보냈다고 말하지 말아주세요
당신은 당신의 아기가 몇살에 죽어야한다는건가요?
내게 다만 당신이 내 아기를 기억하고있다고만 말해주세요
만일 당신이 그를 잊지 않았다면
신은 인간에게 극복할수있을만큼의 형벌을 내린다고는 ㅁ날하지 말아주세요
다만 내게 가슴이 아프다고 말해주세요
내가 낸 아이에 대해 말할수있도록 단지 들어만주세요
그리고 내 아이를 잊지말아주세요
제발 내가 마음껏울도록
지금은 다만 나를 내버려주세요
우리의 삶을 앗아가고 우리를 타인으로 남겨놓는 삶
우리에게 얼굴을 만들어주고 그 얼굴을 마모시키는 삶
별들만큼 사람이 많은것은
우리가 저마다 다른별에서 왔기 때문이지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마음의 병에 시달리고 무엇인가 손에 잡히지 않는것을 찾아헤메는지 모른다
그것은 우리가 세상에 태어난 순간부터 남의 기준에 맞도록 끊임없이 가지치기를 당했기 때문이다
정작 중요한것들은 잡초로 취급되어 잘려졌다
종교역시 다른 세속적인것들과 마찬가지로 우리에게 심리적인 위안을 주면서 배타적인 믿음을 심어주는것이 되어버렸다
신은 내가 신의 말을 듣는 그 귀로 내 말을 듣고 계신다
아, 나는 저 세계에 가고 싶었다 모든것들이 온곳으로 되돌아가고 무의 흰 세계만이 허공에 떠있는곳, 잃은것에 대한 아픔과 얻은것에 대한 희망마저도 시든곳. 내면의 지켜봄이 너무나 강렬해서 그 댇상마저 녹아 없어지는곳. 그곳에 이르고 싶었다
세상에서 가장 강한자는 돈에 길들여지지 않는 사람이다. 잃을것이 많으면 겁도 늘어난다. 반면 아무것도 가진것이 없는사람은 용감하게 옳은길을 갈줄안다. 어떤일을 하건 손해볼게 없는 까닭이다.
"아빠! 아빠 눈속에 내가 들어있어요!"
슬픈 아버지의 눈은 맑은 수면이 되어 채현을 비추었다
"채현이 눈속에도 내가 들어있구나1"
"채현아, 눈동자에 비친사람을 눈부처라 한단다.
아빠에겐 네가 바로 부처구나!
아빤 너를 부처삼아 살고싶다"
왜그럴까? 해는 왜 지기전에 하루중 가장 붉게 타오를까!
지기전에말이야..
그 소리에 새벽빛이 번지며 새순의 초록이 선명해지고 이슬이 영롱해지는 순간은...
-박소연, 눈부처
이별뒤에 듣는 음악은 아무리 유치해도 비수처럼 내 가슴을 에더라
사랑이 끝난 뒤에야 온세상이 법문으로 가득차있는줄 알겠더라
포도가 열린 포도나무가 그림을 그린다
밤에도 결코 잠들지않는
달의 입술을 지닌 얼굴을
1789년 시적된 혁명은 1793년들어 한계를 드러내고 있었다. 혁명은 피비린내를 맡으며 파행햇다. 로베스 피에르는 반대파를 닥치는대로 옥에 가두고 왕당파라는 의심이 들면 가차없이 사형에 처했다. 그러나 이 열렬한 루소의 숭배자도 당통을 처형한지 4개월이 못되어 단두대의 이슬로 사라지고 말았으니... 영국의 역사가 토머스 칼라일은 신음한다. "자유여, 너의 이름으로 무슨 죄가 저질러졌느냐?"
내슬픔은 독신을 꿈꾸는 몽상가
신문을 보며 우는 어리석은 휴머니스트다
주일이면 교회에 가고
월말이면 절집에 나가는
내 슬픔은 죄질이 나쁜 사상범
왜 슬픔은 하나의 사상으로 자리잡지 못하였는가?
오지않는 너를 기다리다가
나는 알게 되었지
이미 네가
투명인간이 되어
곁에 서있다는것을
그래서 더불어 기다리기로한다
가까스로 저녁에서야
두척의 배가 미끄러지듯 항구에 닻을 내린다
벗은 두배가
나란히 누워
서로의 상처에 손을대며
무사하구나 다행이야
응, 바다가 잠잠해서
울지마라 외로우니까 사람이다
살아간다는것은 외로움을 견디는 일이다
공연히 오지않는 전화를 기다리지 마라
새들이 나뭇가지에 앉아있는것도 외로움때문이고
네가 물가에 앉아있는것도 외로움때문이다
산그림자도 외로워서 하루에 한번씩 마을을 내려온다
종소리도 외로워서 울려퍼진다
사람은 서로 아무리 사랑하고 좋아하고 곁에 오래있어도 결국 혼자잖아요? 그렇게 좋아한다면 왜 서로 짝 하고 하나로 되지 않을까요? 글쎄, 글쎄 하지만 하나가 된다면 또다시 하나라서 외로울거야
너를 대하면 나는 퍽이나 좋은 음악을 듣는기분.
그래서 너를 만날때 내안의 나는 춤을추게 돼.
우아하고도 발랄하게
너는 내안의 나를 춤추게해
너는 나를 춤추게해
내 안의 한송이 꽃마저도
나는 이제 너에게도 슬픔을 주겠다
사랑보다 소중한 슬픔을 주겠다
겨울밤 거리에서 귤 몇개 놓고
살아온 추위와 떨어온 할머니에게
귤값을 깍으면서 기쁘허던 너를 위하여
나는 슬픔의 평등한 얼굴을 보여주겠다
내가 어둠속에서 너를 부를때
단한번도 평등하게 웃어주질않은
가마니에 덮인 동사자가 얼어죽을때
무관심한 너의 사랑을 위해
흘릴줄 모르는 너의 눈물을 위해
나는이제 너에게도 기다림을 주겠다
이세상에 내리던 함박눈을 멈추겟다
보리밭에 내리던 봄눈들을 데리고
추위에 떠는 사람들의 슬픔에게 다녀와서
눈그친 눈길을 너와함께 걷겠다
슬픔의 힘에대한 이야기를 하며
기다림의 슬픔까지 걸어가겠다
너구리 잭은 또 싸웠어..그러다가는 달아나 숨고, 또다시 나와서 싸우고.. 너도 알다시피 너구리 잭은 평생 싸우는것밖에 해온게 없어. 이제 그놈이 갖고있는 유일한 재산이 바로 그 찬송가 열쇠란 말이다. 네 보기에 너구리 잭이 심통을 부리는것처럼 보였다면, 그건 아마 이제 싸울게 아무것도 남아있지 않아서일거야. 잭은 그것밖에 할줄 모르거든.
사람을 돕더라도 도움받는것을 견딜수 있는 사람만 도와야한다. 도움받는것을 견디지 못하는 사람은 나중에 가면 자기를 도와줬다고 나를 원망한다.
그는 상 뜨뻬쩨르부르그 고아원 시절부터 나를 미워한다. 이유는 간단하다. 언제나 나에게 신세만 지고있기 때문이다. 내가 달려와 자기를 구해주면 줄수록 녀석은 나를 점점 더 미워했다. 빚은 쌓여만가는데 그것을 갚을길이 없기 때문에. 사람은 타인에 대해서 많은것을 용서할수 있다. 하지만 자기를 도와준것에 대해서는 용서를 할수 없다. 이것이 바로 내가 소년원에서 배운 두번째 교훈이다.
사정이 이러하다보니 막상 승리가 닥쳐오면 사람들은 지표를 잃고 갈팡질팡하면서 대개는 익히 알고있는 <정상상태>로 돌아가기 위해 서둘러 패배를 준비하기 쉽상이다.
외로움이라는것은 결코 익숙해질수있는 종류의 감정이 아니다. 시간이 흐를수록 가부키 배우의 분장처럼 더욱더 짙어져서 어느날 갑자기 낯설기 짝이없는 얼굴을하고 슬그머니 목덜미에 차가운 손을 올려놓는것이 외로움의 속성인것이다.
닮았기 때문이다. 닮았기 대문에, 우리는 어떻게하면 서로에게 가장 효과적으로 상처줄수있는지 너무도 잘안다. 상처주고 상처입는 상대의 마음속도 제 속을 들여다보듯 훤히 읽어냈기때문에 항상 상대에 대해 연민을 지닐수밖에 없었다. 우리는 둘다 위선적이라기보다는 위악적이었고, 막말을 하며 자신을 상처입힐수있는 종류의 인간이엇으며, 겉보기와는달리 마음이 약했다.
우리의 스무살에민주화운동시절을 잠깐 기억하고 말았습니다. 연애는 금기였지요. 우리는 커다란 사랑만을 강요받았습니다. 글쎄요, 누구였을까요. 강요의 주체는 누구였을까요. 선배? 시대? 조직? 혹은 독재자? 아니면 나자신?
나는 자신이 없었던겁니다. 내가 사랑할수 없었음이 절망적이었기때문에. 사랑한다는 착각을 사랑이라고 생각했었기때문에.
얼마전 이야기 끝에 같은 어려움을 겪는데도 왜 어떤이는 더 성숙해지고 어떤이는 소위 망가지는지 토론을 벌인 적이 있었습니다. 그때 한사람이 말했지요. 가장 중요한것은 어려움의 본질을 직시하려고 하는가 아닌가의 차이라고 말입니다. 어려움의 본질. 직시, 그래요 압니다. 안다고 하는 저를 그냥 좀 놔두십시오. 안다고 말하고 싶습니다.
불행을 당사는 사람에게 가장 큰 폭력이 비난이지요. 그래서 불행한사람들이 가장 힘든것이 수치심이라고합니다.. 불행보다 힘든것이 수치심이라고 말이지요.
되돌아보면 진정한 외로움은 언제나 최선을 다한후에 찾아왔습니다. 그것은 자기 자신의 본질을 직시하지 않으려고 이리저리 거리를 기웃거리는 외로움과는 다른것입니다. 자기자신에게 정직해지려고 애쓰다보면 언제나 외롭다는 결론에 다다릅니다.. 친구가 말했습니다. 당하면 외로움이고 선택하면 고독이라고, 우리는 한참 웃었습니다만 외로우니까 글을쓰고, 외로우니까 좋은 책을 뒤적입니다. 외로우니까 그리워하고 외로우니까 다른사람의 고통을 이해합니다.
왜냐하면 우리모두가 완전을 향해 나아가고자할때, 불완전만큼 더 큰 동력은 없기때문입니다.
사랑이라는 이름으로 학대가 일어날수있고, 비겁한 위인과 순결한 배반자가 있다는것도 알게되었습니다.
인간이 지니고 있는 그런 속성들에 대해 우리는 소위 비인간적이라는 형용사를 붙이곤 한다. 솔직히 말하면 그것은 비인간적인 속성이 아니고, 인간속에 있다고 인정하기싫은 부분일것이다.
광학적으로 보면 흰색이란 우리가 바라보는 사물의 표면위에 빛이 100%반사될때 나타나는 색이다. 즉 흰색으로 보이는 사물은 자신의 색을 보여주지 않는다는 말이다. 스스로 색을 감추고 오로지 빛만을 보여주는색, 그것이 흰색이다.
흔ㅅ히 사실주의 화가라고 불리는고야가 이 침묵의 기간동안 본것은 오히려 사실너머에서나 볼수있는 환상과도 같은 진실이었을것이다. 그리고 인간내면에 자리하고있는 어두운 진실들은 그의 손에의해 마치 사실인것처럼 그려졌다. 그 그림속에서는 아버지가 제 자식을 잡아먹고있고 노인의 뒷전에는 항상 죽음이 따라다니고있으며, 군중은 사탄의 설교에 영혼을 팔고잇다.
세계는 절망스럽지만 사람들이 이 절망스러운 세계속에서 완전히 불행해질수없는이유는 신이 우리에게 괴로워할 권리를 스스로 사들이는 법을 아름다움이라 가르쳤기 때문이다.
그때 저를 오싹하게 만든것은 나약하고 가엾은 소피메이슨의 유령이 아니라 아무것도 보이지않는 눈, 아무것도 들리지 않는 귀, 자기 자랑만 늘어노는 요란스러운 목소리였습니다. 소피를 잘 알지못하는 우리조차도 소피가 곁에있다는 사실을 느꼈는데 그 남자는 전혀 신경을 쓰지않고 계속 자기 얘기만 떠들어대고 있었습니다. 피츠버그에서 큰돈을 벌어 성공했다는 자랑만을 끊임없이말이죠.
이 나라 미국의 가장 위대한점은 가장 부유한 소비자들도 본질적으로는 가장 가난한 소비자들과 똑같은것을 소비하는 전통을 세웠다는것이다. 텔레비전 광고에 등장하는 코카콜라는 엘리자베스 테일러도 미국 대통령도 마신다는것을 알수 있으며, 당신들도 마찬가지로 콜라를 마실 수 있다. 콜라는 그저 콜라일뿐, 아무리 큰 돈을 준다 하더라도 길모퉁이에서 건달이 빨아대고있는 콜라보다 더 좋은 콜라를 살수는 없다.
진정으로 원하는 일을 위해 특별히 시간을 내지않는다면 늘 해야할일이 넘칠것이고 늘 너무나 바쁠것이다.
만약 어떤 방안에 대해 90%의 사람들이 찬성한다면 저는 절대로 그 방안을 채택하지 않습니다. 곧바로 쓰레기통에 버리죠. 이미 다른사람이 그것을 시작했겠죠. 남들이 시작하지 않은 일을 저는 시작합니다. 그게 바로 저입니다.
언제까지 스스로 자신의 가능성을 죽일것인가?
언제까지 자기자신을 의심할것인가?
언제까지 자기자신을 낮출것인가?
"내가 알렉산더. 바로 이나라의 대왕이다."
"내가 디오게네스. 바로 개요."
"너는 내가 두렵지 않느냐?"
"당신은 좋은사람인가요 나쁜사람인가요?"
"나는 좋은사람이오."
"내가 좋은사람을 왜 두려워해야한단 말입니까?"
알렉산더 대왕은 디오게네스에게 소원을 물었다.
"지금 당신이 내 햇빛을 가리고있으니 비켜주시오."
가슴으로 살아라
세상에서 가장 긴 거리는 가슴과 머리의 30cm. 머리에서 가슴까지 도달하기위해 평생의 시간이 걸리는 사람도 있다.
우리는 나이가 먹었다던가 건강이 나쁘다거나 가난하다던가 하는 여러이유에서 아직 죽음이 오지 않았는데도 은퇴자의 삶을 살려한다.
우리는 다르게 행동할수 있을때 비로소 자유롭다.
너는 살아있는한 죽지않았고 죽으면 존재하지 않으니 죽음이란건 아무것도 아니다.
시간은 흘러가고 모든것은 변하기 마련이다
언제까지 행복하지도않을것이며 언제까지 불행하지도 않을것이다
돌이켜보니 그들의 삶은 하루하루가 절정없는 위기였고 멈추지않는 롤러코스터였다. 불안속에서 반짝이는 행복으로 그들은 일생의 슬픔을 견뎠다. 하지만 그들의 짧은 명랑은 아주 오랫동안 반짝거렸다.
암사자는 유전된 본능으로 사냥을 한다. 자신의 행위를 사냥이란 말로 지칭하지도, 다른 약한 동물들을 잡아먹는 행위가 과연옳은것인지 곰곰히 생각해보지도 않는다.
갈데없는 그대의 마음이 하늘위에서
부딪치고 무너져 내리던 날이었다
나는 다른 하늘을 알지 못하여
고스란히 슬픔속에 발이 묶였다
그러자 아주 오랫동안
이별을 그리워하고있었다는 생각이 들었다
나의 뿌리는 기억에 매달렸다 그러나
사랑이 영원하지 않은것처럼
이별도 한순간이었다
사실 나는 여러분에게 갔을때 약하였고 두려워서 몹시 떨엇습니다. 그리고 내가 말을 하거나 설교를 할때에도 지혜롭고 설득력있는 언변을 쓰지않고 오로지 하나님의 성령과 그의 능력만을 드러내려고 하였습니다. 그것은 여러분의 믿음이 인간의 지혜에 바탕을 두지 않고 하나님의 능력에 바탕을 두게 하려는 것이었습니다.
주여, 살면서 제게 좋은일들이 일어나는것은 제가 그것들을 받을 자격이 있기때문이라는걸 깨닫게 하소서. 당신의 진리를 좆고자 저를 추동하는 힘이 성인들을 추동했던것과 같은것임을, 제가 품는 의심이 성인들이 품었던 의심과 같은것임을 저의 나약함이 그들의 나약함과 다르지 않다는것을 받아들일수있도록 제게 겸허함을 허락하소서,아멘.
세상에 절대적인 진리는 없다
누구도 진리를 독점할 수 없다
그러나 동시에 세상에는 절대적인
보편성을 띠는 윤리가 있다
대서양? 그ㅜ 땅에 원래 살던 사람들에게 대서양은 서쪽바다가 아니고 동쪽바다였는데? 신대륙? 그 땅이 어느날 갑자기 바다속에서 떠오른것도 아닌데 웬 신대륙? 인디언? 그사람들은 인도에 사느 사람들과는 아예 종자가 다른데? 보호구역? 사냥할 들소도 멸종당하고 농사는 꿈도 못꾸고 우라늄 광산에 진흙탕, 모래바람만 날리는 땅에 가둬놓고 무슨 보호?
인간은 자기 집단의 특별한 문화를 보편적인 진리로 주장하는 아주 못된 버릇을 가지고 있다. 그런 인간들은 문화와 자연을 구분할줄 모른다. 자신들의 문화에서 옳다고 인정되는것들은 자연스러운것이고, 그렇지않은것은 자연에서 벗어난것이된다. 문화가 끝없이 변화한다는 사실도 그들에겐 아무영향을 끼치지 못한다. 나와 다른 남을 인정하지 못하는 그 못된버릇은, 인류의 역사 내내 셀수없는 폭력을 낳았다. 다름을 틀림으로 규정하기 시작하면 그때부터 다름은 교정의 대상이 된다. 피부색이 다르면 인간이 아니라 짐승이 되었고, 종교가 다르면 역시 인간이 아니라 악마가 되었다.
그대가 받은 꽃다발. 무심코 보면 화려하지만 사실은 꽃들의 토막시체나 다름이 없다.
남을 비방하길 좋아하는 족속들은 대개 자신이 완벽하다는 착각속에 빠져서 산다. 자신의 결함이 드러나면 어떤 구실을 붙여서라도 합리화시킨다. 까짓거, 인정해주자. 그는 나름대로 우주의 중심일테니까.
세상어디에도 기쁨과 행복만으 가져다주는사람은 존재하지않는다. 세상에 존재하는 모든 사람은 언제나 그 크기와 깊이에 비례하는 고통을 수반하고있다.
하찮은것들을 소중하게 여기지 못하면 작은일에도 행복을 느끼는 성품을 가질수없다. 작은일에도 행복을 느끼는 성품을 가질수 없다면 그는 한낱 걸어다니는 욕망덩어리에 불과하다.
쓰레기같은인간도 자신이 쓰레기같은 인간이라는 사실을 자각하면 쓰레기같지않은 인간으로 격상된다. 그러나 대부분의 스레기같은 인간은 자신이 쓰레기같다는 사실을 절대로 인정하지않기때문에 평생을 쓰레기같은 인간으로 살수밖에 없는것이다.
진실로 사랑했으나 미처 고백하지 못한 낱말들은 모두 하늘로가서 별빛으로 돋아나고 역시 진실로 사랑했으나 이별끝에 흘린 눈물들도 모두 들판으로 가서 들꽃으로 피어난다. 우리가 사는세상, 아름다운것들은 모두 피맺힌 슬픔 한모금씩을 간직하고있다.
폭포같은 마음을 지닌채 호수같이 살려고 애를쓰다가 바다로 가고야 말았다.
구름이 하늘에서 재주를 부립니다
어머니, 저것좀 보아, 구름이 흰곰같네
햇볕은 따스하게 마루를 비춥니다
일하는 엄마손을 아가는 흔듭니다
서로가 다르면서 서로가 똑같기를 하나님의 이름으로 종용한다.
생각은 뇌안의 범주에 속해있고 마음은 심안의 범주에 속해있다. 대상과 내가 이분되면 생각이고 대상과 내가 합일되면 마음이다.
길이있어 내가 가는것이 아니라 내가 감으로써 길이 생기는것이다.
그 어떤 분별의 자리에도 마음을 묶어두지 말라.
나는 과거라는 시간속에서 그대의 나이를 경험했고 그대는 미래라는 시간속에서 나의 나이를 경험할것이다.
그 여자 흐린별을 보던 창을 두고
별에 녹아버린 눈동자를 그냥 두고
어느날 잠에서 깨어 너의 등을 오랫동안 바라본적이 있었다. 손을 내밀어도 닿지못할 아득한 거리
별은 밝았고 바람은 광속으로 밤하늘의 가장자리를 훑고 지나갔다
너의 숨소리는 봄날의 꽃피던 나무아래에 켜켜이 쌓여있던데
범죄는 예술같은거다. 경지에 이르려면 어릴적부터 시작해야한다.
한송이 국화꽃을 피우기 위해서 봄부터 소쩍새는 그렇구 우렀나보다
욕심이 갈등을 낳고 번뇌를 낳으며 욕심이 고통을낳고 집착을 낳으며 집착은 무도를 낳소 무도는 파멸을 낳는다
모든천사들도 평범한 사람의 모습으로 나타나고 모든 악마들도 평범한 모습으로 나타날것이다. 예수가 다시 태어난다면 아마도 그는 내곁에 살고잇는 이웃 아저씨의 무습으로 태어날것이며 부처도 마찬가지일것이다. 그러므로 모든 천사들은 우리 주변에 있다. 우리 이웃들의 얼굴에, 이 복잡한 속세지옥을 견디며 살아가는 우리들의 어깨위에 천사는 언제든지 그 날개를 접고 쉬기위해 기다리고 있는건지도 모른다. 우리가 조금 마음을 열어 우리 주변을 돌아볼수 있다면, 우리는 모두 보이지 않는 날개를 지닌 천사가 될것이다.
우리도 떨어집니다 여기 이손도 떨어집니다
그대여 보시라, 만상이 떨어지는것을
절벽아래에서 피는 꽃은 유난히 흔들림에 민감하다고 한다
사랑은 모든 병을 이기는 힘이 아니라 어떤 병도 두려워하지 않게되는 위안이다
우리는 너무나 가난해서 우리가 믿을수있는건 우리 자신의 노력밖에는 없다는 말을
잔느는 자기도 모르게 로잘리와 자신, 둘의 생애를 견주어 보았다. 누가 더 행복했는지 불행했는지. 가슴에는 아무런 쓰라림도 남아있지 않았다. "생각해보면 인생은 사람들이 생각하는것만큼 그렇게 행복한것도 불행한것도 아닌가봐요. 그렇지요, 마님?"
장애를 가진 사람들의 신비는 그들이 권력보다 진정하 사랑의 관계를 더 갈망한다는것이다. 그들은 갈채를 보내거나 승ㅈ인을 시켜주는 집단에서 안주하는 삶에 집착하고 매달리지 않는다. 가장 중요한것을 갈망한다.
당신을 죽이기전에 이렇게 그대에게 입맞췄지.
이제 나 죽어가면서 어둠속에서 그대에게 입맞춤을
한번더 입맞춤...
아! 또다시 입맞춤을....
이쯤되면 사회적 약자라는 그럴싸한 이름을 붙이는것도 참 허망한 일이 되고만다. 우리는 모두 자기좋자고 정의니 신이니 도덕이니 그런것들을 끌어다가 자기이기심을 감추며 살아가는 존재가 아닌가. 단지 오늘 내가 이 정치판에서 재수없어 쓰러졌지만, 다음번엔 더 가혹하게 너를 쓰러뜨릴텐데, 누구를 원망할수있으랴.
승패는 무엇이 진실이냐가 아니라 무엇을 진실로 만들었느냐
최소한 그들에게 재판이란, 분쟁속에 내재한 진실을 규정하고 정의를 실천하는 과정이 아니라 분쟁밖에서 진실을 만들어내고 여기에 비추어 무엇인가를정의라고 실천하는 과정일 뿐이다.
강포수는 일찍이 귀녀가 이같이 자신 가까이 있는것을 느낀적이 없다. 가랑잎더미위에 쓰러뜨렸을적에는 귀녀는 강포수에게 멀고 먼 존재였다. 강포수를 좋아하건 싫어하건 그것은 이제 아무런 의미도없다. 저주받을 악녀이건 축복받은 선녀이건 그것도 강포수하고는 관계가 없었다. 다만 거기에 그여자가 있다는것과 그여자를위해 서러워해줄 단 한사람으로써 자기가 있다는것, 그것뿐이었다.
우리의 자아는 인정받고싶은 욕구로 늘 허기져있는 상태이다. 이러한 욕구가 부분적이라도 채워진 후에야 비로서 나아닌 다른것으로 관심을 돌릴수있다. 그러므로 타인에 대하여 관대한 사람은 오직 자기자신을 좋아하는 사람뿐이다. 자존감이 높은 사람들은 같이 어울리기 쉽다. 자기의 기본적인 욕구가 충족되어있기때문에 다른사람의 필요를 생각해줄 정신적인여유가있는것이다.
인간은 전부 선하거나 악하지 않다. 한사람안에는 다양한 면들이 공존한다. 그리고 그중 우리가 보여주는 부분은 다른사람이 우리에게 끌어내는 부분이다. 내가 다른사람을 판단하는순간 다른사람도 나를 판단할 근거를 얻는다. 다른사람에게 좋은인상을 남기려고 하지마라. 그냥 그사람에게 내가 좋은인상을 받았다는것을 알리는편이 낫다.
'시, 글귀' 카테고리의 다른 글
롤리타 (0) | 2014.06.07 |
---|---|
미생 (0) | 2014.06.07 |
브람스를 좋아하세요 (0) | 2014.01.14 |
능소화 (0) | 2014.01.14 |
네가 누구든 얼마나 외롭든 (0) | 2014.01.14 |
소심함과 대담함. 때로는 우스꽝스헙게까지 느껴지는 진지함과 즉흥성의 결합이 유쾌하게 느껴졌다.
그녀의 집중력은 옷감의 견본이나 늘 부재중인 한남자에게 향해있을 뿐이었다. 그녀는 자아를 잃어버렷다. 자기 자신의 흔적을 잃어버렸고 결코 그것을 다시 찾을수가 없었다. "브람스를 좋아하세요?" 그녀는 열린창앞에서 눈부신 햇빛을 받으며 잠시 서있었다. 그러자 "브람스를 좋아하세요?" 라는 그 짧은 질문이 그녀에게는 갑자기 거대한 망각덩어리를 , 다시말해 그녀가 잊고있던 모든것, 의도적으로 피하고 있던 모든 질문을 환기시키는 것처럼 여겨졌다. "브람스를 좋아하세요?" 자기 자신이외의것, 자기 생활 너머의 것을 좋아할 여유를 그녀는 여전히 갖고있기나 할까? 물론 그녀는 스탕달을 좋아한다고 말하곤 했고, 실제로 자신이 그를 좋아한다고 여겼다. 그것은 그저 하는 말이었고, 그녀는 그 사실을 알고 있었다.
그렇긴해도 그녀는 시몽과 함께 살고있었다. 그녀는 밤마다 그녀의 품안에서 사랑을 속삭였고 때로는 아주 능란한 연인이나 어린아이만이 끌어낼수있는 몸짓. 그녀 자신도 그 강도를 인지하지 못할정도로 소유욕에 찬 동시에 그 모든 소유가 덧없다라는 생각에 두려워하는 몸짓으로 그를 끌어안았다.
그랬다. 그것은 차라리 '그들 두사람'에 대한 일종의 가학인 셈이었다. 두사람중하나가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서는 "이제 이만하면 충분해"라고 외쳐야했다. 그녀는 그녀 자신이나 로제에게서 그런 반응이 나오기를 거의 절박한 마음으로 기다리고 있었다. 하지만 그런일은 일어나지 않았다. 아마도 그들사이의 무언가가 죽어버린 모양이었다.
어머니 집에가서 옷을 몇벌 가져오려고해. 그걸 당신옷장 옷걸이에 걸어놓고 데스노스 기념관에 가서 당신 마음에 들 수채화를 찾아볼거야. 한순간 그녀는 터져나오려는 웃음을 참았다. 전혀 관계없는 두 구절을 하나의 문장으로 만들다니, 정말이지 시몽다웠다.
그녀는 한번 더 그를 품에 안고 그의 슬픔을 받쳐주었다. 이제까지 그의 행복을 받쳐주었던것처럼. 그녀는 자신은 결코 느낄수없을듯한 아름다운 고통, 아름다운 슬픔, 그토록 격렬한 슬픔을 느끼는 그가 부러웠다.
세상은 더이상 울지않고 흔들리지도 않습니다. 모두 제자리를 찾아, 가고 왔습니다.
저는 당신이 떠나지 않았음을 압니다. 죽음이 사랑을 갈라놓을수 없음도 압니다. 차가운 냉기속에서도 당신의 체온을 느낄수 있습니다. 칠흙같은 어둠속에서도 당신의 미소를 볼수있습니다. 소쩍새마저 잠든 밤에는 당신의 목소리를 듣습니다.
걸음을 재촉한 강물도 더디 흐른 강물도 바다에서 만나기는 매한가지라고 당신은 힘겨운 목소리로 말씀하셨지요. 저는 당신이 힘겹게 이어가신 말씀을 잊지 않습니다. 당신은 서둘러 떠나셨고 저는 남았지만 우리는 바다에서 만날것입니다
젖은 시간은 더디게 갑니다
아무것도 모르고 쌔근 쌔근 잠자던 우리 승희
깨고나서 엄마가 없으면 울텐데요.
정월에는 솔술을 담갔고, 이월에는 매화주를, 삼월에는 진달래 붉은 꽃잎을 따다가 술을 담갔습니다. 친정집에서는 삼짇날 진달래 꽃으로 화전을 부쳐먹었지만 당신이 우리집으로 오신 뒤로 진달래 꽃을 따다가 두견주를 담갔지요. 아버지는 꽃에 꿀이 많아 단내가 난다며 두잔을 거푸 마시곤 했습니다. 사우러에는 난초뿌리를 캐내서 술을 담갔습니다. 꽃도 줄기도 시들어 죽은줄알았는데 난초는 살아있었습니다. 그 향이 얼마나 좋은지 향기를 맡아보라며 징그러운 난초뿌리를 제 코앞으로 쑥 내밀며 웃던 당신의 웃음소리가 귓가에 들리는듯 합니다.
'시, 글귀' 카테고리의 다른 글
ㅎㅎ (0) | 2014.01.15 |
---|---|
브람스를 좋아하세요 (0) | 2014.01.14 |
네가 누구든 얼마나 외롭든 (0) | 2014.01.14 |
두근두근 내인생 (0) | 2014.01.14 |
님의 침묵 (0) | 2014.01.14 |
꺽어도 후회가 되고
꺽지않아도 후회가 되는
제비꽃
개구리야.
그런목소리를 가졋다면
춤추는것도 배울만 하겠구나.
쌀을 뿌려주는것도
죄가되는구나
닭들이 서로 다투니
여름매미
나무를 꼭 껴안으며
마지막 울음을 운다
여름옷으로
거지는
하늘과 땅을 입었다
너무 울어 텅비어버렸는가
이 매미허물은
이 숱도 한때는
흰눈이 얹힌
나뭇가지였겠지
우리 두사람의 생애
그사이에
벚꽃의 생애가 있다
반딧불 하나가
내 소매위로 기어오른다
그래, 나는 풀잎이다
그럴가치도없는세상
도처에 벚꽃이 피었네
죽이지마라, 그 파리를
살려달라고
손을 싹싹빌지않는가
도둑이 들창에 걸린 달을
두고갔구나
이 미친세상에서
미치지 않으려다
미쳐버렸네
새벽에 핀 이 꽃들
나는 내가 보려고했던것보다 더 많이
신의 얼굴을 보았다
벌레야, 벌레야
너는 노래로써
네 업을 다 지울수 있다고 생각하니?
당신은 모르겠지만
지금울고있는 저 매미는
오래 살수가 없어
여러사람이 함께보는것은 그 아무리 고귀한것이라고 해도 우리를 미치게 만들지는 않아. 하지만 혼자서 새벽 두시의 국도를 달리는 오토바이 위에 앉아있다면 바라본게 그저 평범한 벚나무일지라도 미쳐버릴수밖에 없는거야.. 그래서 그런 생각도 해본적이 있어. 그때 내가 벚난무가 보인다고 말했더라면 삼촌이 덜 외로웠을까.
아마 할아버지 또래의 다른 남자가 자신의 생애를 돌아본다하더라도 그와 크게 다르지 않았을것이다.. 아마도 고난에 찬 한국현대사는 개개인의 삶을 모두 똑같이 만들어버렸으니까.
"나는 너희에게 이르노니 너희 원수를 사랑하며 너희를 핍박하려는 자를 위하여 기도하라" 라는 신상수훈의 한 구절은 평생 헬무트 베르크를 괴롭혓다. 자신의 분노도 이해했고 증오도 이해했지만 결국 사랑만은 이해하지 못했다고 헬무트 베르크는 나에게 털어놓았다. 증오나 분노와 달리 사랑이 가리키는것은 저마다 달랐다. 예컨대 광주학살을 명령한 사람이 가족을 아끼는 감정도 사랑이었고, 그순간 정민의 몸을 껴안고 한없이 만지려고 드는 내 마음도 사랑이었다. 사랑은 그 모든것이었다. 세상이 혼란스러워지는까닭은 그 모든것을 사랑이라는 이름으로 부르기 때문이었다. 헬무트 베르크에 따르면, 하지만 그게 바로 신의 뜻이었다.
그게 선전방송이든 선교방송이든, 누군가에게 얘기를 들려주기위해 그처럼 너울거리며 미지의 곳을 향해 날아가는 전파를 생각하면 라디오에서 흘러나오는 목소리가 어느것이든 그 목소리는 필연적으로 외로울수밖에 없다고 정민은 생각했다.
폭력의 반대말은 비폭력이 아니라 권력이라고 한나 아렌즈는 말한바 있다. 권력이 훼손될때, 그러니까 권력이 다른곳으로 이양될때 폭력은 일어난다. 권력유지에 안간힘을 쓰는 정권아래에서 폭력이 번번이 일어나는 까닭이 그때문이다. 그런 정권은 대리감시자들에게 그 불안한 권력을 나눠주는것으로 권력유지의 한 방편을 삼는다. 부끄럽게 그 대리감사자들의 권력은 언제라도 다른곳으로 이전될수 있기때문에, 그들은 일상적으로 폭력을 행사할수밖에 없다.
누군가를 사랑하는 이는 그가 사랑하는 여인의 '결정들'. 한 여인의 변덕과 연약함에도 애착을 갖는다. 그녀의 얼굴에 있는 주름살과 기미, 오래입어 해진옷과 삐딱한 걸음걸이 등이 모든 아름다움보다 더 지속적이고 가차없이 그를 묶어놓는다.
우리가 아는 누군가의 삶이란 두번째 회고담이다. 삶이란 우리가 살았던게 아니라 기억하는것이며 그 기억이란 다시 잘 설명하기 위한 기억이다.
"양볼도 좀 빨갛게 하면 더 예쁠거야"
라고 내가 말하면 정민은
"그건 화장으로 되는 문제가 아니고, 네가 나를 좀 부끄럽게 만들면 되는거야" 라고 대답했다.
세상의 모든 동물들은 보호색을 지녀 자기를 감추는데, 반딧불이는 왜저렇게 환하게 자기를 드러낼까? 자기가 존재한다는 사실을 알리기위해 이 먼 지구까지 빛을 보내는 저 별들처럼 반딧불이는 고독한걸까? 그렇게 해서라도 서로 연결되려고 보호색따위는 기꺼이 던져버린것일까? 죽을각오를 하고서라도 누군가에게 보여지기위해서?
어떻게 옛날사람들은 저렇게 멀리 떨어진 두 별이 서로 만났으면 좋겠다고 생각한걸까? 그때도 세상은 서로 그리워하는 사람들로 가득찼던걸까? 아무리 외로워도 여름밤이면 다들 참 마음이 편안해지고 위로가 됐겠네. 저렇게 멀리 떨어진 별들도 일년에 한번씩은 서로 만날수 있다고 생각하면 아무리 힘들어도 참았겠다. 그지? 고개만 들면 거기 서로를 간절히 그리워하는 별들이 보였을테니까.
하루에 사십이해일천이백만경 번 이산화탄소를 배출해내는 인간들로 가득 찬 이 지구에서도 우리가 살아갈 수 있는 까닭은
이 180이라는 숫자 때문이다. 인간만이 같은 종을 죽이는 유일한 동물이라는 걸 알아야 한다.
하지만 그럼에도 인간만이 웃을 줄 아는 유일한 동물이라는 것도 알아야 한다. 180이라는 이 숫자는 이런 뜻이다.
앞으로 네게도 수많은 일들이 일어날 테고 그중에는 죽고 싶을 만큼 힘든 일이 일어나기도 할 텐데.
그럼에도 너라는 종은 백팔십 번 웃은 뒤에야 한 번 울 수 있도록 만들어졌다는 얘기다.
이유없이 외로움에 시달리는것보다 누군가가 그리워서 외로움에 시달리는편이 훨씬 낫다는걸 나는 그때 알았다.
어둠속에 머물다가 단 한번뿐이엇다고 하더라도 빛에 노출되어본 경험이 있는 사람이라면 한평생 그 빛을 잊지못하리라. 그런 순간에 그들은 자기 자신이 아닌 다른 존재가 됐으므로. 그 기억만으로 그들은 빛을향한, 평생에 걸친여행을 시작한다. 과거는 끊임없이 다시 찾아오면서 그들을 습격하고 복수하지만, 그리하여 그들은 사기꾼이나 협잡꾼으로 죽어가지만 그들이 죽어가는 세계는 전과는 다른세계다.
그사람이 없는 세계에서 살고잇는게 아니야. 걸으면서 나는 생각한다. 그사람을 만난 후의 세계야. 그러니까 괜찮아. 다 괜찮아. 마치 기원후와 기원전같지만, 그렇게 생각하는걸보면 역시 그사람은 나의 하느님인것이다.
삶이 누군가를 위해 슬퍼할수 있다는건 흔치 않은 일이니까... 네가 나의 슬픔이라 기쁘다 나는
그러니까 너는 자라서 꼭 누군가의 슬픔이 되렴
우리는 서로의 목소리가 떨린다는것을 알았다. 동시에 알고, 동시에 알았다는것을 또 동시에 알았다. 늘 그렇다. 왜그런지는 모르지만.
ㅡ나는 아무데도 가지 않을거야. 당신이 돌아올때까지 여기서 기다릴거야. 한걸음도 움직이지 않을거야.
그사람이 없는장소에 익숙해질수 없다. 그곳이 어디든 내가 있어야할 장소가 아니니까.
내가 이만큼 살면서 깨달은게 하나 있다면, 세상에 육체적인 고통만큼 철저하게 독자적인것도 없다는 거였다. 그것은 누군가를 이해할수 있는것도, 누구와 나눠가질수 있는것도 아니었다. 그래서 나는 지금도 '몸보다 마음'이 더 아프다. 라는 말을 잘 믿지 않는편이다. 적어도 마음이 아프려면, 살아있어야하니까.
여튼 고향서 '아니 내가 저런애들땜에 막 가슴뛰고 잠못이뤘나' 뜨악하곤 해. 실은 나도 그렇게 미숙하고 촌스러웠을게 틀림없는데, 그런 나를 또 누군가가 사랑해주었던게 분명할텐데말이야.
하지만 가끔은 우리가 하느님이 아니라서 좋은점에 대해 생각해요. 세상에 하느님만 할수 있는일이란게 따로 있다면, 정말 그렇다면, 거꾸로 인간만이 할수있는일도 따로 있지않을까 하고... 그게 결코 하느님을 능가할만한 일은 못되더라도 하느님도 부러워할 몸짓들이 인간사이에 존재하는게 아닐까 하고요..
누군가가 다른사람은 사랑할때 그 사랑을 알아보는 기준이 있어요. 그건 그 사람이 도망치려한다는거예요. 엄마 나는.. 엄마가 나한테서 도망치려 했다는걸 알아서, 그사랑이 진짜인걸 알아요.
그 느낌이 정말 궁금했어요. 어.. 그러니까.. 저는.. 뭔가 실패할 기회조차 없었거든요. 실패해보고 싶었어요. 실망하고, 그러고, 나도 그렇게 크게 울어보고 싶었어요.
터무니없다는걸 알면서도, 또 번번히 저항하면서도, 우리는 이해라는 단어의 모서리에 가까스로 매달려 살수밖에 없는 존재라는생각이 들었다. 그런데 어쩌자고 인간은 이렇게 이해를 바라는 존재로 태어나버린걸까? 그리고 왜 그토록 자기가 느낀 무언가를 전하려고애쓰는걸까? 공짜가 없는 이 세상에, 가끔은 교환이 아니라 손해를 바라고, 그러면서 기뻐하는 사람들은 왜 존재하는걸까
바람에 이름을 붙인사람은 누구일까
가을 추, 물결 파. 가을물결. '이쁘구나, 너 예쁜 단어였구나..' 그런데 이성의 관심을 끌기위해 보내는 눈빛을 추파라고 하다니, 하고 많은 말중에 왜? 그러자 곧 그런것도 모르냐는듯 바람이 나를보고 속삭였다. '가을다음엔 바로 겨울이니까!'
나는 내가 너무 괜찮아보여서도 지나치게 혐오감을 줘서도 안된다는걸 알고있었다. 사람들이 직시할수 있을정도의 불행. 기부프로그램을 움직이는건 그런것이어야 한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승찬아저씨의 말도 맞았다. 사람들은 자기가 누굴 돕고있는지 알고싶어할거다. 그건 곧 세상에 공짜가 없다는 뜻이기도 했다.
그 속엔 녀석이 원시생물이었을때부터 간직해온 정교한 수학체계가 들어있을 터였다. 아마 우리 몸에도 같은 식이 들어있겠지.. 그러면 애초에 그 수를 만든 존재는 누구였을까. 그리고 나를 만든 그 분께선 어째서 그리고 어디서 그 셈을 틀리셨을까.
그러자 문득 무언가를 가지고 있는만큼, 가지지 않으려고 하는것또한 욕심일수 있다는 생각이 들엇다. 둘중 하나는 선택했으면서 아무것도 안 가진척 하는것도 기만일수 있다고..
어른이 되는 시간이란게 결국 실망에 익숙해지는 과정을 말하는것이겠지만 글이란게 그걸 꼭 안아주는건 아닐지라도 보다 잘 실망하게 만들어주는 무엇인지도 모르겠어
누군가에는 하느님이 필요하고 누군가에게는 거짓말이 필요하고 누군가에게는 진통제가 필요하듯 네겐 너보다 더 아픈사람이 필요한게 아닐까. 네 인사에 대꾸조차 안하려고 했었지. 하지만 지금은 생각이 바뀌었지. 만일 네게 그게 필요하다면 나는 그걸 주고싶다고. 왜냐하면 나는 네가 좋고, 가진것이 별로 없으니까.
가져본걸 그리워하는 사람과 갖지못한걸 상상하는 사람중 어느쪽이 더 불행한지 모르겠어. 하지만 굳이 하나를 골라야한다면 전자일거라고 생각해.
날카로운 첫키쓰의 추억은 나의 운명의 지침을 돌려놓고 뒷걸음쳐서 사라졌습니다. 나는 향기로운 님의 말소리에 귀먹고 꽃다운 님의 얼굴에 눈멀었습니다. 사랑도 사람의 일이라 만날때에 미리 떠날것을 염려하고 경계한것은 아니지만 이별은 뜻밖의 일이 되고 놀란 가슴은 새로운 슬픔에 터집니다. 그러나 이별은 쓸떼없는 눈물의 원천을 만들고 마는것은 스스로 사랑은 깨치는것인줄 아는 까닭에 겉잡을수없는 슬픔의 힘을 옮겨서 새 희망의 정수박이에 들이부었습니다. 우리는 만날때에 떠날것을 염려하는것과 같이 떠날때에 다시 만날것을 믿습니다. 아아 님은 갔지마는 나는 님을 보내지 아니하였습니다. 제 곡조를 못이기는 사랑의 노래는 님의 침묵을 휩싸고 돕니다.
떠나신 뒤에 나의 환상의 눈에 비치는 님의 얼굴은 눈물이 없는 눈으로는 바라볼수가 없을만치 어여쁜것입니다. 님이 떠날때의 어여쁜 얼굴은 나의 눈에 새기겠습니다. 니므이 얼굴은 나를 울리기에는 너무도 야속한듯 하지마는 님을 사랑하기 위하여는 나의 마음을 즐거웁게 할수가 없습니다. 만일 그 어여쁜얼굴이 영원히 나의 눈을 떠난다면 그때의 슬픔은 우는것보다도 아프겠습니다.
이세상 어느곳도 견고하지는 않다
어느곳이나 모두 흔들리고있다
나는 내가 의지해야할곳을 찾았지만
이미 죽음과 고통에 시달리지않은곳이 없다
낡은것을 좋아하지말라 새로운것에 매혹당하지도 말라
사라져가는것을 슬퍼하지말라 잡아끄는것에 붙잡히지 말라
어데라도 눈이 보이는데마다 당신이 계시기에 눈을감고 구름위와 바다밑을 찾아보았습니다
당신은 미소가 되어서 나의 마음에 숨었다가 나의 감은눈에 입맞추고 네가 나를 보느냐고 조롱합니다
님이여, 나의 마음을 가져가려거든 마음을 가진 나에게서 가져가셔요
그리하여 나로 하여금 님에게서 하나가 되게 하셔요
그렇지 아니하거든 나에게 고통만을 주지마시고 님의 미음을 다주셔요
그리고 마음을 가진 닌ㅁ에게서 나에게 주셔요 그래서 님으로 하여금 나에게서 하나게 되게 하셔요
그렇지 아니하시거든 나의 마음을 돌려보내주세요 그리고 나에게 고통을주세요
그러면 나는 나의 마음을 가지고 님이 주시는 고통을 사랑하겠습니다
길가에서 이름도 모르는 꽃을 보고서 행여 근심을 잊을까하고 앉았습니다
꽃송이에는 아침이슬이 아직 마르지 아니한가하였더니
아아 나의 눈물이 떨어진줄이야 꽃이 먼저 알았습니다
고통의 가시덤불 뒤에 환희의 낙원을 건설하기위하여 님을 떠난 나는 아아 행복입니다
님이여! 님은 나를 있게한 님이여 삼라만상을 있게한 님입니다
나는 님이 그리워도 님에게 갈수 없습니다 나는 님이 어디에 계신지 알수 없습니다
나는 다만 내안에 머문 님의 흔적을 찾아 헤멜 따름입니다
나는 다만 가없는 그리움으로 간절한 기도로나 님의 숨결을 느낍니다
달빛이 쓰다듬는 어린잎새 꿀벌레소리 소멸하는 늙은 연꽃의 메마른 줄기
보리밭에 일렁이는 바람에서 나는 님을 느낍니다
사랑하는 님이여!
님은 신령하신 님이기에 삼라만상은 조홧속입니다 님이 부리신 조화는 하늘의 뜻처럼 절로 이루어집니다
그러나 님은 나의 사랑에 침묵으로 대하실 뿐입니다
님은 낯익은듯, 그러나 늘 낯선 풍경으로만 내앞에 나타나실 뿐입니다
님은 지천으로 핀 들꽃이었다가 분분한 낙화이셨다가 댓잎 위 잔설이셧다가
바닷가 저녁놀이셨다가 한여름 장대비가되어 주룩주룩 내리십니다
나는 아직 님의 맨얼굴을 어림하지 못합니다 내안과 밖에서 님을 찾아 밤낱을 헤메었지만
님의 고운얼굴을 만나지 못한채 나는 이제 해 저무는 저녁에 서서 님의 풍경을 하염없이 바라봅니다
바람도 없는 공중에 수직의 파문을 내이며 고요히 떨어지는 고동잎은 누구의 발자취입니까
지리한 장마끝에 서풍에 몰려가는 무서운 검은구름의 터진틈으로 언뜻언뜻 보이는 푸른하늘은 누구의 얼굴입니까
꽃도없는 깊은 나무에 푸른이끼를 거쳐서 옛 탑 위의 고요한 하늘을 스치는 알수없는 향기는 누구의 입김입니가
근원은 알지도 못할 곳에서 나서 돌부리를 물리고 가늘게 흐르는 작은 시내는 굽이굽이 누구의 노래입니까
연꽃같은 발꿈치로 가이없는 바다를 밟고 옥같은 손으로 끝없는 하늘을 만지면서 떨어지는 날을 곱게 단장한 저 하늘은 누구의 시입니까
타고남은 재가 다시 기름이 됩니다 그칠줄을 모르고 타는 나의 가슴은 누구의 밤을 지키는 약한 등불입니까
당신의 얼굴이 달이기에 나의 얼굴도 달이 되었습니다
나의 얼굴은 그믐달이 된줄은 당신이 아십니까
아아, 당신의 얼굴이 달이기에 나의 얼굴도 달이 되었습니다
시간을 두고 천천히 생각해보면 뻔해지는게 이야기의 속성이었다. 그것들은 요셉이 언젠가 만들었던 이야기이거나 언젠가 했던생각, 심지어 언젠가 썼던 문장 중 하나일것이다. 아니라면 남들이 이미 해버린 이야기이거나 그들이 요셉보다 더 잘아는 이야기임이 틀림없다. 요셉은 문득 인쇄소에서 용지를 재단하는데 쓰이는 패턴이라는 금속형판을 떠올렸다. 언제부터인가 자신의 머릿속도 그것과 비슷해졌다는 생각이 들었다. 치수대로 종이를 찍어내고 나머지는 버리는 식으로 패턴을 반복하고 있는것이다.
의욕적인 계획을 늘어놓고 조언을 구하는 사람들은 오직 동의를 원할 뿐이었다. 충고를 구하는 사람들은 거의 언제나 희망을 기대했다. 비관이 신중함이고 냉정해야만 객관이라고 생각하는 요셉의 충고는 받아들여지기 힘들었다. 결국 시간만 아까웠다.
그녀는 옛날에도 남편의 죽음을 막지 못했는데, 이제 남편의 두번째 죽음 앞에서 아무 힘없이 서있게 된것이다. 이제 더이상 주검으로써 존재할수조차 없게 된 '늙은주검'의 죽음앞에 말이다.
난 잘해주는거 별로 좋아하지 않아. 무조건 어느 한 장소로 가는것도 싫고 어쩐지 가줘야할것만같은 기분도 싫어. 선택의 여지가 많은걸 자유롭다고하지. 대신 선택할만한게 모조리 싸구려라야해. 그래야 자유롭게 아무거나 선택할 수 있거든. 서른개도 넘는 카페가 모조리 싸구려라는게 이 거리의 매력이지.
나쁜짓엔 창의성이 있어야지. 세상에 없는것을 상상해야하는것이 크리에이티브한거니까. 다 있는걸 상상하면 그건 있는것을 몰랐다는것, 즉 무식밖에 더 되냐?
자기가 준 것을 다 계산해놓고 그걸 빚으로 생각하니까 문제지. 너는 뭘로갚을건데 하는 식이면 그게 맡겨놓은거지 선물이야? 내가 잘 해준거 잊지마. 이러는놈들도 조심하라구, 생색내거나 보상받으려고 하는건 진짜 주는게 아니야.
요셉이 역겨운것은 발언권이 없는 죽은자를 이분법적 틀에 집어넣어 루저로 만들어놓고 그를 동정함으로써 자신들이 공의의 편에 서있다고 믿는 자들의 기만적인 패턴이었다. 누군가를 약자로 만드는것은 강자가 아니라 바로 그처럼 강약을 나누는 틀이고 그리고 그 틀에 스스로 편입되는 자들이다.
어서 케이크에 불켜고 소원비세요.
내소원은 아무도 안들어줘. 왜요?
그동안 소원들어달라고 귀찮게 한 신이 하도많아서 사이가 좀 안좋아.
그럼 제가 들어드릴게요. 도경이 무심히 다시한번 손목시계를 보았다.
그 모습은 도경이 시계를 차고 섹스한다는 사실을 떠오르게했다.
아버지가 사십팔년전 오늘 뭘했는지는 알수 없지만 그 날로부터 열달전에는 섹스를 하고있었다. 요셉은 생일이라는게 비로소 실감났다.
약자의 피해의식이 때로 권력이 되는건 역설적으로 보수적인 이데올로기 때문이라는게 요셉의 생각이었다. 남에게 의존해야만 생존할수 있는 어린아이와 자기가 살고 있는사회의 부자처럼 되기를 꿈꾸는 가난한자들은 현재의 이데올로기가 지속되기를 원하므로 보수적일 수 밖에 없다. 또한 가난하다는이유로 남을 동정하는것이야말로 돈만을 기준삼는다는 점에서 물질만능주의라고 요셉은 생각했다. 노동의 신성함을 부르짖으면서 육체노동자를 하위계층으로 특별히 배려하는 태도역시 편견이었다. 장애인의 경우만 보더라도 그들은 시혜적인 온정을 원하는게 아니라 보통의 인격체처럼 자연스럽게 존중받을 권리를 원하는것이다..... 요셉의 생각이 맞다면 스스로 도덕적이고 정당하다고 믿는 주장일수록 배타적이 되기 쉬웠고 타인에 대한 폭력의 성격을 띠기 일쑤였다.
더 잘 속이려면 적당히 의심하도록 만들어야했다.
그들이 가는 세상의 끝은 s시가 아니었다. 열정이 끝나는 소실점이었다. 매혹은 지속되지 않으며 일정한 분량이 있다. 그 한시성이 그들을 더욱 열렬하게 만든것이었다. 류는 그들에게 매혹과 열정의 시간이 끝나버리는 날 자신이 혼자 비행기에 실려 돌아오리라는걸 예감했다.. 류는 자기기만의 부역보다는 상실을 택했다. 고통보다는 고독을 택한것이다.
고독은 그것을 받아들이는 사람에게 적요로운 평화를 주엇다. 애써 고독하지 않으려고 할때의 고립감이 견디기 힘들뿐이었다. 타인이란 영원히 오해하게되어있는 존재이지만 서로의 오해를 존중하는 순간 연민안에서 연대할수있었다.